향토문화유적소개 보령시 남포면 창동리 당산의 중상단부에 위치한 사우로 마을에서 소로를 따라 약 200여m 올라간 곳에 있다. 중앙에 석계단을 두고 있으며 이 위에 삼문이 설치되었으며,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양식이다. 한글로 경순왕 영모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보령의 경주 김씨들에 의해서 여기서 제사가 행해진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이무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 호는 과암 조부는 이산해, 아버지는 이경전이다. 1629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해미현감, 지평, 서천군수, 대사헌, 대사간,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이무의 묘비는 1804년 5대손 이수하가 짓고 후손들이 세웠다. 석질은 화강암이고 크기는 높이 133cm 폭 54cm 두께21cm이다. 붕당정치가 격화된 시기 남인계의 중심 인물로 활동한 인물의 묘비이다. 현재 묘소와 그 주변의 임야를 한산 이씨 문중에서 보령시에 기부하여 시민의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향토문화유적소개 1898년 윤석봉 선생이 주도하고 신섭 조진학 등 유림들이 발의하여 세운 사우이다. 주자와 송시열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하면서 보령과 주변 지역에 화서학파의 학맥을 전하고 그 중심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조선말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유교문풍을 진작하는 장소와 항일 유림들의 강학장고가 되었던 곳이다. 처음에는 주변에 강학 공간인 건물도 있었지만, 현재는 영졍 대신 위패를 모신 제향 건물만 남아있고, 매년 유림들이 춘추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사우는 병조판서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도공 윤회와 영의정을 지내고 무송부원군에 봉해진 문헌공 윤자운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원래 이 사우는 성종25년(1494)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홍죽리에 건립되었으나, 그 곳에 사는 윤자운의 후손들이 괴학하여 관리가 부실해짐에 따라 1725년 웅천읍 소황리 지역에 사는 윤자운의 후손들이 위패를 모셔다가 웅천 소황리에 재건립하였다. 그러니 소황리에 군사시설이 들어거면서 현 위치로 옮겨졌다. 이 문헌사는 현 위치에 옮겨지기 전까지만 해도 보령지역에서 가장 전통적인 사우 건축의 양식을 보존하고 있었지만 이전하면서 주초석만 옮겨왔을 뿐 나모지는 새로 만든 것들이다. 웅천 무송윤씨는 임지왜란 후 입향하여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종증에서 관리하고 제향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김남호는 고려말 전라우도 도만호로 왜구를 격퇴하고 보령헤 정착한 무장 김성우의 아들이다. 김문서는 조선 중종조의 무신이며, 김성우의 고손인 김극신의 아들로 어려서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묘비 앞에서 돌로된 방형의 함이 있는데 전면에 광산김씨족보함이라고 새겨져 있어서 족보를 보관하는 용도이다.
향토문화유적소개 김성우 장군은 고려 말의 무장으로 보령 광산 김씨의 입향조이다. 김성우 장군의 후손 번창을 알려주는 묘비는 그의 사후 200여년 후인 1607년 후손 김경지가 직고 김섭이 써서 묘전에 세웠다. 주로 자손 번창에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크기는 높이 142cm 폭 55cm 두께12cm 이며 석질은 대리석이다. 현재는 해마다 묘소와 묘비 앞에서 후손과 보령문화원 주관으로 추모 제향이 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