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유적소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서(士舒), 호는 건암(健庵). 김장생(金長生)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숙종의 장인 김만기(金萬基)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김진규(金鎭圭)임.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가 대제학을 역임, 당대에 이름을 떨쳤음. 저서로는 『건암집』이 있고 시호는 문간(文簡)임. 묘역에는 비갈, 상석, 문인석 1쌍, 망주석 1쌍 등이 있고 비갈은 1780년에 오석(烏石)으로 건립되었음. 비갈의 비문은 이조판서이자 대제학인 황경원(黃景源)이 지었고, 글씨는 손자인 김두공(金斗恭)이 썼음. 특히 비문의 앞면은 석봉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겼음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덕보(德甫), 호는 개산(皆山), 본관은 진주(晋州).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거쳐 벼슬이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에 이름.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묘는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음. 조경(趙絅)이 찬(撰)하고 허목(許穆)이 서(書)한 그의 신도비(神道碑)에는, 공은 인품이 강직하고 방정했으니, 그것은 타고난 천성 이었다. 그리고 특립독행(特立獨行)의 지조가 있었으며, 문장을 하는 것도 그 위인(爲人)과 같았음. 저서로 개산집(皆山集)이 전해지고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와리풍물놀이는 일명 ’와상농악’ 또는 ’동작리두레놀이’ 라고도 하는데, 마을에 재인이 많이 살아 조선시대부터 그 명성이 높았다고 하는데 해방 후 다시 성행하여 1950년대에는 최 전성기를 이루었음. 신도시 개발과 함께 맥이 거의 끊어졌다가, 안산와리풍물놀이보존회가 결성되어 현재까지 잘 전승되어지고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양주 최씨(楊州崔氏)의 중시조(中始祖) 독선당(獨善堂) 혼(渾 9世)이 연산군 5년(1498) 무오 사화(戊午士禍)를 피해 父인 자준(自濬), 祖父인 담(潭)를 모시고 현 안산시 사동 감자골로 입향(入鄕)한 이래 이곳에서 별세한 6대 13기(27명)의 무덤과 시조로부터 상계(6世가지) 7명의 제단이 보존되어 있는 안산시 소재 최대 규모의 묘역임
향토문화유적소개 심훈이 「상록수」에서 ’청석골’ 이라 부른 마을이 바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의 샘골 마을이고 농촌의 문맹퇴치를 위해 야학에 온힘을 기울이는〈채영신〉이란 여자주인공은 일생을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한 최용신(崔容信)의 실제인물임. 1974년 11월 30일 이곳에 루씨동문과 천곡교회에서 상록수 최용신 선생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으며,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음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중기의 공신으로 자는 관옥(冠玉)이며 호는 북저(北渚)이고 시호는 문충(文忠), 여물(汝 )의 아들임. 그의 초상은 정사공신(靖社功臣)에 책록될 당시 그려진 것을 모본으로 하여 영의정에 올랐을 때 모사한 화첩본으로 보이고, 당시의 공신도상(功信圖像)의 특징을 잘 나타내 보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