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향토문화유적 목록

상주시 향토문화유적 목록 및 정보

경상북도 상주시 향토문화유적 목록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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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 향토문화유적 목록 표

향토문화유적명
유적종류
주소
유적구분
무양동 석조귀부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거동동 산99-10
유형문화유적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
기념물
상주 상산관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임란북천전적지 내)
유형문화유적
우복 정경세 신도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 27-3
유형문화유적
상주 공검지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비재로 1333
기념물
난재채수 신도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산71
유형문화유적
상주 취은고택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골가실1길 138-7
유형문화유적
무곡리 삼층석탑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무곡리 산46-1
유형문화유적
효곡재사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효곡로 365-35
유형문화유적
낙동 물량리 암각화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물량리 산131
기념물
상주 오작당
민속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선상서로 1975
유형문화유적
상주 용산정사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17-40
유형문화유적
상주 양진당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
유형문화유적
상주 승곡리 추원당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59-15
기념물
의암고택
민속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2길 42-7
유형문화유적
상주 청간정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54
유형문화유적
상주 운평리 구상화강암
천연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산 17
유형문화유적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유형문화유적
상주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유형문화유적
상주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유형문화유적
상주 남장사 감로왕도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유형문화유적
상주 남장사 영산회괘불도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유형문화유적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유형문화유적
상주 남장사 일주문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사)
유형문화유적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303(남장사 관음선원)
유형문화유적
풍양조씨 족보판목 및 보각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4길 25
유형문화유적
석장승(남장사)
민속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산63-6
유형문화유적
상주 청죽 성람 묘갈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 94-1
유형문화유적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북장1길 317
유형문화유적
상주 북장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북장1길 317(북장사)
유형문화유적
상주 북장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북장1길 317(북장사)
유형문화유적
북장사 삼층석탑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북장1길 317(북장사)
유형문화유적
상주 구 내서면 사무소
등록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신촌2길 10-5
유형문화유적
상주 옥동서원
사적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2길 29
유형문화유적
금돌성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산98
유형문화유적
상주 병풍산 고분군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병성동 산24
기념물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07-2
유형문화유적
상주 복룡동 유적
사적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83-7
유형문화유적
상주 조공제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504-1
기념물
조정 임진란 기록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
유형문화유적
조정 종가 문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
유형문화유적
상주 석조천인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
유형문화유적
정기룡 유물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
유형문화유적
상주 증손향약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
유형문화유적
월간 창석 형제 급난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
유형문화유적
노소재 문적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
유형문화유적
김선치의 벼루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
유형문화유적
경상도영주제명기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국립경주박물관)
유형문화유적
낙상동 폐탑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684(상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유형문화유적
상주 목가리 석조관세음보살입상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목가리 산 6
유형문화유적
정기룡장군유적(충의사)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충의로 230
기념물
상주 퇴강성당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퇴강물미길8
유형문화유적
화달리 삼층석탑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화달1길 2
유형문화유적
전사벌왕릉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화달리 산 44-1
기념물
상주 금흔리 이부곡토성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금흔리 산1
기념물
상주 도림사 소장 청동유물 일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서곡1길 96-43(도림사)
유형문화유적
상주 상락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4길 19(상락사)
유형문화유적
상주 복룡동 석조여래좌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동 163-48
유형문화유적
상주향교 대성전 동무 서무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동 203-1
유형문화유적
충신의사단비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10-14
기념물
상주 흥암서원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34
기념물
상주향청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왕산로 282
유형문화유적
상주 농업협동조합 구 창고(상주농협 구 창고)
등록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왕산로 64
유형문화유적
천운정사
민속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외답2길 46
유형문화유적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외답동 산24-1
유형문화유적
상주 전식종가 소장 고문서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관동1길 58
유형문화유적
상주 전식초상 일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관동1길 58
유형문화유적
상주 전식조복 및 공예품 일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관동1길 58
유형문화유적
상주 대산루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46
유형문화유적
우복종택
국가민속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90
유형문화유적
병암고택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918-3
유형문화유적
상주 두곡리 뽕나무
천연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324
유형문화유적
두곡리 은행나무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640
기념물
동학교당 유물
민속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우기1길 64
유형문화유적
상주 동학교당
민속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우기1길 64
유형문화유적
상주 추원재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나한양범길 294
유형문화유적
상주 쾌재정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함창로 41-61
유형문화유적
상주옹기
무형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흑암리 29
무형문화유적
수암종택
국가민속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중동단밀로 156-33
유형문화유적
갑장사 삼층석탑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215-187
유형문화유적
용흥사 삼불회 괘불탱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223-35(용흥사)
유형문화유적
체화당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가천2길 52
유형문화유적
창석사당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가천2길 52
유형문화유적
상주 천주교 신앙고백비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삼괴리 361
유형문화유적
존애원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율리1길 5
기념물
상주민요
무형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초산1길 56
무형문화유적
상주 함창향교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무운로 1557-4
유형문화유적
함창 오봉산 고분군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산33
기념물
상주 관음사 아미타회상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오동1길 37(관음사)
유형문화유적
상주 함창 사마소 유물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용곡로 214-5
유형문화유적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9
유형문화유적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9
유형문화유적
전고령가야왕릉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 7
기념물
상주 관음사지사적비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동관2길 219-36
유형문화유적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9
기념물
상주 낙화담 소나무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477
기념물
상오리 칠층석탑
보물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699
유형문화유적
견훤산성
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산42
기념물
기영회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금산리 584-3
유형문화유적
노후 및 노홍 신도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사산길 2-12
유형문화유적
옥연사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사산길 2-12
유형문화유적
상주 상현리 반송
천연기념물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50-1
유형문화유적
신봉리 석조보살입상
문화유산자료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산51
유형문화유적
극락정사 아미타여래회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4길 154
유형문화유적
상주 견훤사당
민속문화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315-11
유형문화유적

경상북도 상주시 향토문화유적 목록 상세 정보

무양동 석조귀부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5-08-05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석조귀부가 원래는 무양동 1-1번지(비석거리)에 있었으나 현 위치로 이건 하였지만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조각이 온화한 감을 주며 윤곽은 둥글고 높은 편이다. 귀갑문과 배면상에 연화좌와 장방형의 비좌만을 조각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전기에 유행했던 수법으로 보인다. 이 석조귀부는 본디 무양동 1-1번지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 놓았다. 조선기의 것으로는 상태가 완전하며 거귀부(巨龜趺)다. 비석과 이수(이首)는 없어졌으나 화강석에 조각한 귀부로서 윤곽은 둥글고 높은 편이다. 표현이 온화한 편이며, 귀갑문(龜甲文)이나 절육표현(絶肉表現)은 없고 배면상(背面上)에 연화좌 표현은 조선 태조 헌릉비나 영암(靈岩) 도갑사(道岬寺) 도선국사비, 삼전도비(三田渡碑) 등의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수법을 보이고 있다. 전장은 190cm, 최대 폭은 160cm, 전고 990cm, 비좌장 124cm, 비좌폭 57cm 등으로 원래는 상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 비석거리에 있었다.
  • 전화번호 054-532-7789
  • 관리기관명 허브나라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거동동 산99-10
  • 네이버 무양동 석조귀부 검색 링크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7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88-09-23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3필지(31140㎡)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1592년(임진왜란) 때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로 9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성지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일(李鎰)을 순찰사로 임명하여 상주 북방 북천에 진을 치고, 고니시가 이끄는 왜병 1만 7천 여명에 대항하였으나 패하였다. 이곳에는 순국한 9위를 배향하고 있는데 종사관 윤섬, 이경류, 박호 등 중앙군과 판관 권길, 사근도찰방 김종무, 호장 박걸, 의병장 김준신, 김일과 무명용사 1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1990년부터 정화사업을 실시하여 임란북천전적비를 건립하는 등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조성하였다. 임란북천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중앙군과 향군이 왜군의 주력부대와 회전하여 900여 명이 분연히 순국한 호국의 성지로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이를 막기 위해 급히 남하하여 4월23일 상주에 도착한 조선의 중앙군 약 60여 명과 상주판관 권길, 호장 박걸이 밤 세워 소집한 장정 800여 명 등 900여 명이 17,000여 명이나 되는 왜병과 분전하여 전원이 순국한 곳이다.이로 인하여 선조대왕으로부터 상주 전역에 복호(復戶, 조세 부역의 면제)의 은전(恩典)을 입은 전국의 유일한 지방이기도 하다.매년 양력 6월 4일 제향 행사를 거행하여 그 분들의 넋을 기리고 후세들의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주요시설(총 면적 27,193㎡)충렬사, 상산관(지방유형문화재 제157호), 침천정, 태평루 등이 있음.
  • 전화번호 054-537-6068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
  • 네이버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검색 링크
상주 상산관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5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2-02-24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고려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시대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며 중앙에서 파견된 사신이 머무르던 상주목의 객사이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조선 중종 21년(1526)에 화재를 입어 고쳐지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또다시 불타 선조 39년(1606)에 다시 세웠다. 원래의 위치는 지금의 동성동 상주경찰서 자리였으나 1940년에 옮겨져 상주여자중학교의 교실로 사용되었다. 그 후 다시 만산동으로 옮겨졌다. 가운데에 본관을 두고 양쪽에 동익헌·서익헌이 붙어 있다. 본관은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동익헌은 앞면 7칸·옆면 3칸으로 본관쪽 지붕은 본관과 같은 맞배지붕이고 동쪽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서익헌은 앞면 4칸·옆면 3칸으로 동익헌과 같이 본관쪽은 맞배지붕이고, 서쪽은 팔작지붕이다. 상주 상산관은 현존하는 건물로는 남부지방 최대의 규모이다.
  • 전화번호 054-537-6068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임란북천전적지 내)
  • 네이버 상주 상산관 검색 링크
우복 정경세 신도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32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00-12-0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조선시대 후기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비는 조선 시대 1563년(명종18년)~1633(인조11년) 동안 조정의 문신으로 활약한 우복(愚伏)선생의 유적을 적은 비이다.이 비석은 당초 도로 입구에 세워졌으나 지금은 주위가 개간되어 논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정경세 선생의 증손 정석교(鄭錫僑)가 경상감사 이명준(李命俊)으로부터 기증을 받은 남포석(藍浦石)에 비각 작업을 하고 세우지 못하던 것을 현손 정주원(鄭源)이 음기(陰記)를 찬(撰)하고 1758년에 6대손 정종로(鄭宗魯)에 의하여 건립되었다.비석 규모가 장대하고 글씨 보존이 전체적으로 양호하다. 우복 선생은 禮學(예학)에 밝아 예학자로 불리었으며, 서애(西涯) 유성룡(柳成龍)선생의 수제자로 선생의 학문은 영남과 기호 지방에서도 널리 인정하였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진주정씨종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 27-3
  • 네이버 우복 정경세 신도비 검색 링크
상주 공검지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97-09-29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19710㎡
  • 조성시대 삼한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공검지는 일명 공갈못이라고도 하는데, 의림지 벽골제 등과 같은 시대인 삼한시대에 수축된 저수지로 역대 여러 차례의 보수를 하였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길이 없고, 다만 1195년(고려 명종 25) 상주 사록 최정빈이란 분이 고쳐 쌓았는데 못 둑의 길이가 8백 6십 보이고, 못 주위의 길이가 1만 6천 6백 4십 칠척이라 상산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 못에 물이 차면 수심이 다섯 길이나 되었고, 서쪽 못 가로는 연꽃이 만발하는데 그 절경을 중국의 전당호에 비길 정도라 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못의 얼음 어는 것을 보고 흉년, 풍년을 예측하였다고 한다. 또 정월 열나흗날 밤, 소들이 땀을 흘리는데 그것은 밤을 이용하여 소들이 못에 얼음을 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 경주 용담의 암용이 공갈못 숫용에게 시집온 이야기도 있다. 또 볶은 콩 서되를 하나씩 먹으면서 말을 타고 못 가를 돌아도 콩이 모자란다는 말도 있다.속설에 저승에 가도 공갈못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은 이승으로 되돌려 보낸다고 하였다. 함창 읍지에는 이 못의 서반에는 몇 리에 걸쳐 연꽃이 피어 있으며 마치 중국의 전당호를 방불케 하는 풍취를 지녔다고 하여 그 아름다움과 연꽃의 풍광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옛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옥같은 글을 남기어 그 아름다운 풍광을 연상케 하여 준다. 이 못의 이름이 공갈못이라 부르게 된 것은 못 둑을 쌓을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묻었다는 매아설화(홍귀달의 공검지 기문)에 의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향민들은 이 못을 신비롭고 여험스러운 영지로 신앙하여 왔다.축조방법에 따라서 공갈못, 공건제(功建堤), 공권제(公券堤)로, 또한 못의 규모에 따라 경호(鏡湖), 사연(蛇淵), 검호(劒湖), 검호(劒濠) 등의 다양한 이름이 있다.이제는 이와 같은 전설과 연밥 따는 노래가 공갈못을 상기시켜 줄 뿐 못은 논으로 변하여 그 모습과 풍광을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옛 못을 알려주는 비석이 옛 못 뚝에 외롭게 서서 이곳을 찾아주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서운한 발걸음을 되돌려야 하는 곳이 되었다. 공갈못 하면 곧 우리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것은 연밥 따는 노래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노래는 공갈못을 배경으로 하여 발생 형성된 민간의 노래로 지방성과 토속성을 짙게 띈 민요의 성격으로 이 노래의 내용은 연정, 사친, 완월관어, 호련 등의 유형을 이루었다.형식으로는 기본형, 복합형, 생략형, 후렴첨가형 등이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노래는 동남 동녀를 대상으로 한 한국민요의 대표할 만한 노래군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군이 상주, 함창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서 전승 보존되는 이 지방 특유의 무형 문화재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이 공갈못노래(일명 공갈못 채련요) 외에도 매아설화(埋兒說話), 증주설화(승柱說話), 쌍용연투설화(雙龍戀鬪說話), 용경설화(龍耕說話), 우경설화(牛耕說話), 지형설화(地形說話), 지킴이설화 등의 설화와 한시(漢詩) 수 백편이 남아있다. 또한, 이 공검지 주변은 옛부터 목축장이요, 민물어시장이며, 관광지로서의 역활도 충실히 해 온 사실은 특기할 만 하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비재로 1333
  • 네이버 상주 공검지 검색 링크
난재채수 신도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30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98-08-0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1517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전기 중종반정 때의 공신인 나재 채수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채수(1449∼1515) 선생은 세조 14년(1468) 생원이 되고, 이듬해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일을 맡아보았다.『세조실록』·『예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으며, 성종 8년(1477) 홍문관 응교가 되어 도승지 임사홍의 간악한 죄상을 아뢰어 몰아내기도 하였다.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폐비 윤씨를 옹호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성종 16년(1485)에서야 다시 기용되었다. 연산군 12년(1506)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여기에 가담하여 공을 세워 4등 공신이 되어, 인천군에 봉하여졌다. 59세 때에는 벼슬을 버리고 경상도 함창(지금의 상주)으로 내려와 이곳에서 머물며 남은 여생을 보내었다. 비는 약간 엉성하게 표현된 듯한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조선시대 전기 당시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상주 지역에 남아 있는 신도비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산71
  • 네이버 난재채수 신도비 검색 링크
상주 취은고택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82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11-01-0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2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 공성면 봉산리 골가실 마을에서 세거해 온 여산송씨 정가공파의 고택이다. 500여m에 달하는 토석 담장 안에 안채, 사랑채, 안대문채, 바깥대문채, 우물채, 곳간채의 6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문중에 의하면 취은고택은 송량의 손자인 송덕부(宋德溥 ; 1603~1674)가 골가실로 옮겨 정착하여 창건한 후, 그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거듭 중수한 건물이라고 한다.대지주의 주택으로 50여 가구로 둘러싸인 골가실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소작농이었던 까닭에 地主의 집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소작인들의 집이 형성된 독특한 ‘지주중심 농가형마을’의 모습을 보여준다.약 10,000㎡의 넓은 대지를 토석담장으로 일곽을 이루면서 다시 내부담장으로 안채, 사랑채, 문간채 영역을 강하게 한정짓고 농삿일을 위한 커다란 마당영역을 안채 영역 뒤쪽에 둔 것 또한 취은고택이 갖는 독특함이다.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평면 우측에는 툇마루와 한 칸 반의 온돌방이 위치하며 좌측에는 2칸의 마루, 2칸의 온돌방으로 배면에 반침을 설치하고 좌측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있다.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좌측 칸은 부엌을 두고 전후 퇴칸을 둔 2칸의 안방과 배면에 퇴칸을 둔 2칸의 대청, 전퇴를 대청마루 보다 한 단 높게 마루를 설치한 건너방으로 배치되어 있다.취은고택은, 늦어도 19세기 전반에는 현재 남아있는 형태로 중건된, 향촌사회를 주도했던 상당한 경제적 기반을 갖춘 양반 가옥이며, 사랑채와 안채가 건립 당시의 구조와 양식적 특성을 잘 유지하고 있고, 장대한 토석담장과 함께 대지주 주택의 독특한 구성과 기능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취은고택은 조선시대 지주주택 연구뿐만 아니라 지주주택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주중심농가형마을’의 연구에도 가치가 높으므로 안채, 사랑채의 일부 변형된 부분을 원형복원하는 것을 권장하고, 문화재자료로 지정한다.
  • 전화번호 054-531-3128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골가실1길 138-7
  • 네이버 상주 취은고택 검색 링크
무곡리 삼층석탑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5-08-05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고려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무곡리 삼층석탑은 본디 연암산(기양산) 무곡리 산 37의 2번지에 있던 것을 무곡리 330번지의 밭으로 하산시킨 것이다. 탑이 섰던 자리는 옛 절터로서 지금도 와편이 많이 채집되나 절 이름을 알 수 없다. 탑이 넘어진 것을 본 마을 주민들이 1982년 6월 800m 정도의 산밑으로 옮겨 놓았고 상대갑석(上대甲石)은 운반하기 용이하게 4개로 등분하여 마을까지 운반하였다. 화강석으로 조성한 석탑의 제 1.2 탑신은 없어지고 그와 부재는 완전한 3층 석탑일 것이라. 현재 복원한 것도 삼층석탑이다. 고려시대에 조성한 이 폐탑의 크기는 전체 높이 4.95m, 기단 폭 1.40m, 1층 옥개석 1.05m정도이며, 현재 남은 부재는 1.2.3층 옥개석 3점, 탑신(3층) 1점, 상대갑석 4점, 석동(연화대석) 1점 등이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정보없음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무곡리 산46-1
  • 네이버 무곡리 삼층석탑 검색 링크
효곡재사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5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91-03-25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1688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재사는 우곡(愚谷)선생의 높은 덕을 기리기 위하여 증손 송영(宋穎)이 숙종대에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17세기 후기의 건물로서는 가운데 설주, 연귀마춤 등의 치목수법(治木手法)이 건립 연대와 부합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우곡(愚谷) 송량(宋亮, 1534~1618)선생은 유교를 실천 궁행한 대표적 선비 중의 한 분이다. 스스로 효행을 다한 선비로, 그가 사는 마을 소곡(所谷)을 효곡(孝谷)이라 부르게 된 것은 선조 17년 이후부터라 한다.임진 왜란 때는 창의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아들 이회(以誨)와 이필(以弼)이 양친을 구하려다가 죽고, 딸 노경건(盧景健)의 처와 정이괄(鄭而适)의 처도 수절하여 한 가정에 다섯 분의 충효 열인이 탄생하였다. 특히, 우곡 선생은 향풍쇄신과 흥학육영에 앞장서 낙사계(洛社契)조직에 큰 몫을 하였는데, 병인년(1566년) 낙사계와 무인년(1578년) 낙사계(조약 서문은 우곡이 씀)를 1599년(己亥年) 합사(合社)하여 명실공히 상산의 대계(大契)로 발전시키는데 주역이었다. 또한, 존현육영의 미덕을 높이려 도남서원을 창설(1606년)할 때도 중추적 역할을 하신 인물 중의 한 분이었다. 한마디로 선생은 유교의 이념을 몸소 행한 분으로 효충의 표본이라 일컬을 만하다.
  • 전화번호 054-535-6334
  • 관리기관명 여산송씨문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효곡로 365-35
  • 네이버 효곡재사 검색 링크
낙동 물량리 암각화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84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2024-04-16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식(20㎡)
  • 조성시대 청동기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낙동강을 따라 내려오는 산자락의 해발 43m 나지막한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암각화는 2013년 상주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에 의해 발견되었다. 낙동 물량리 암각화는 소위 영남지역에서 발견되는 검파형 암각화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물량리 암각화는 사람 얼굴과 눈과 코를 분명하게 새겨 놓았기 때문에 추상적인 것은 아니고 사실적인 표현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러가지 종류의 암각화가 발견되었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사람 얼굴을 위주로 새겨 놓은 예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물량리 산131
  • 네이버 낙동 물량리 암각화 검색 링크
상주 오작당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32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민속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2-02-2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양진당 주변의 조성덕씨 소유의 오작당은 민속자료의 지방문화재로서 양진당보다 25년 앞서 양진당 자리에 세웠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좋은 건물이다. 겹집과 홑집이 공존하는 건물로, 중후한 감을 느끼게 한다. 오작당(悟昨堂)은 일명 구당이라고도 하는데 검간(黔澗) 조정(趙靖)선생의 종가로 처음은 선조를 추모할 목적으로 지은 집이다. 1601년(선조 34년) 검간선생이 요포(현재의 양진당 자리)의 옛터에 지었다가1661년(현종 2년) 조대윤 선생이 은천의 새터(新基, 승곡리 자연부락)로 이전하였으며, 이전 당시는 내사 외사 모두 40여 칸이었으나, 1781년(정조 5년) 중수시 겹집과 흩어짐이 공존하는 건물이 되었으며 양진당의 원초형이다. 부재(部材)의 세장한 조각, 기둥의 모접과 격자창 등은 고식의 중후감을 더한다. 현재는 안채, 사랑채, 사당 등 3동이 남았다. 오작당은 처음 이건 한 입재(立齋) 조대윤( 趙大胤)선생은 문명(文名)을 얻은 선비였으며 특히 일가의 친목을 도모하려면 목연(睦姸)이란 계를 조직하여 가문의 흥창을 도모한 선비이기도 하다.
  • 전화번호 054-532-5245
  • 관리기관명 오작당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선상서로 1975
  • 네이버 상주 오작당 검색 링크
상주 용산정사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43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03-04-1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곽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용산이란 뜻은 갑장산 구룡(九龍)의 한 줄기가 동으로 십여리를 달려와 결지된 장소에서 연유하였다 하며, 일명 와연당(臥淵堂)으로 불린다. 당호를 와연당으로 한 것은 대청마루에 누워서 집 앞의 연못을 한가로이 감상 할 수 있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이 건물은 1849년(헌종9년)에 지었으며 구조는 정면4칸 측면 1칸 팔작지붕 반중층 누각형식으로서 주두와 주간(住間)사이에는 소로가 설치되어 있고, 민도리 양식이며, 전면 빈칸은 툇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난간대가 형성되어 있는 양반집 구조로 19세기 이후 섬세한 건축 형식이 잘 나타나 있다.精舍는 조서니대 경제력이 있는 양반들이 공부하던 곳이나 주로 亭子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17-40
  • 네이버 상주 용산정사 검색 링크
상주 양진당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56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2008-07-10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298.38㎡)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 양진당은 검간(黔澗) 조정(趙靖)이 1626년 지은 것으로 양진당 중수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종도리에서 기록이 나온 것으로 보아 1807년(순조 7)에 중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상주 양진당은 전체적으로 정면 9칸, 측면 7칸의 규모의 ‘ㅁ’자형 평면을 한 고상식 건물로서 퇴칸 전면에 세운 6개 기둥은 통재를 사용하였는데, 특이하게 하층부분에는 방형으로 치목하고 상부는 원형으로 다듬었다.지붕은 정침의 툇마루 상부만 겹처마로 하고 나머지는 홑처마로 하였는데, 겹처마의 경우 일반적으로 원형 서까래에 방형 부연을 얹는데 비해 양진당은 서까래를 네모지게 다듬어 부연과 같은 모습을 취하게 했다.본채의 3칸 온돌방 전면과 3칸 대청 배면에 나있는 창호는 모두 중간설주가 있는 영쌍창이다.이 건물은 소위 고상식 주거에 속하는 것으로 건물 바닥을 지면에서 1미터 이상 높게 마련하면서 고상식 주거에서는 보기 드문 구들을 설치한 점에서 조선시대 주거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이다. 방이 두 줄로 나열되는 겹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도 특색이며 기둥은 굵은 부재를 사용하면서도 모서리를 접어서 투박하게 보이지 않게 하는 기술적 성숙도를 보이고 있어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건물로 평가된다
  • 전화번호 054-532-5220
  • 관리기관명 풍양조씨 장천파 문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
  • 네이버 상주 양진당 검색 링크
상주 승곡리 추원당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4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2002-10-1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1881㎡)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건물은 1759년(영조 35년)에 건립되고 1945년과 1975년에 중수하였으며, 黔澗(검간) 조정선생의 불천위(不遷位)를 모시고 있는 재사(齋舍)인 묘우, 강당, 전사청, 고직사가 있다. 사당에는 야간 제향행사시 관솔불을 밝히도록 설치해 놓은 庭療石(정료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강당은 1952년에 移建(이건)한 건물로서 전체적인 형태가 양호하다. 양식은 精舍(정사)에 주로 사용하는 高床式(고상식)형태를 취하고 있다.
  • 전화번호 054-532-5220
  • 관리기관명 풍양조씨 장천파 문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59-15
  • 네이버 상주 승곡리 추원당 검색 링크
의암고택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5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민속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2-10-22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곽(5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운곡(雲谷)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의암고택(依巖古宅)은 모임당(慕任堂) 연안이씨(延安李氏)가 지은 건물이다. 의암(依巖)은 조범구(趙範九)선생의 호로서, 의암고택이라는 당호는 후대인이 의암 조범구 선생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붙인 건물명칭이다. 이 집으로 드나드는 대문 앞에 있는 탕건 모양의 큰 바위를 탕건석이라 하는데, 관습적으로 사람들이 이 탕건석을 의암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의암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로서, 정침(안채)과 사랑채, 안사랑채, 고방채, 대문간채, 사당, 뒤주채, 장독대 등 조선 시대 사대부 주택의 구성 요소를 고루 갖춘 집이다. 1986년 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제177호로 지정되었다. 이 운곡마을에는 의암고택 이외에도 청간정(聽澗亭)과 송동재(松洞齋), 경모재(敬慕齋), 만송재(晩松齋) 등의 재실들, 유신당(維新堂), 양교당(養敎堂), 경신당(敬愼堂) 등의 고가들 및 공동우물, 막돌 담장, 초가와 서낭당 등 양반과 서인이 공동 주거하던 유적들이 산재하여 있다. 원래 (元來) 이 마을은 풍양조씨(豊壤趙氏)의 동족부락(同族部落)으로 모두 100여호(余戶)가량 되었으나 일제시대(日帝時代)부터 감소(減少)하기 시작하여 6.25 전(前)에는 전체(全體) 60호중(戶中) 조씨(趙氏)가 40호(戶) 정도(程度)이었고, 현재(現在)는 25호중(戶中) 11가구(家口)뿐이다. 조준희씨(趙浚熙氏)의 16대조(代祖)인 직장공(直長公) 조희(趙禧)(1507~1587)께서 1565년에 이 마을에 입향(入鄕)하였고, 현재(現在)의 건물(建物)은 7대조모(七代祖母)인 모임당(慕任堂) 연안이씨(延安李氏)(1749~1826)께서 큰아들인 극암(克庵) 조식(1774~1837)과 더불어 1800년경에 지었다. 안채를 제외한 여타 건물들은 소유자의 조부인 만당(晩堂) 조태연(趙泰衍)(1877~1934)께서 1910년에 기존 낡은 건물들을 허물고 개축한 건물들이다. 이 건물의 명칭은 소유자의 고조부인 의암(依巖) 조범구(趙範九)(1834~1896)의 호에서 유래한다. 의암공은 병인양요 때 상주지역에서 의병을 조직하였으며, 당대에 유학자로 성망이 높았던 분이다. 마을의 공동우물이 있는 곳을 돌아 양측에 이웃집 담장이 병렬(竝列)하여 있는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골목끝에 평대문간(平大門間)이 남향(南向)하여 섰다. 대문채 앞 좀 떨어진 곳에 탕건 모양의 큰 바위가 길 한쪽에 박혀 있는데 이 바위를 탕건석이라 한다. 대문간(大門間)과 평행(平行)으로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인 일우당(逸憂堂)이 배치(配置)되었고, 사랑채의 전면(前面) 좌측(左側)에 설치된 일각문을 들어서면 일자(一字) 안채와 ㄱ자(子) 곡간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안채는 남향(南向)으로 배치(配置)되었으며 좌측(左側)에 2m정도 거리를 두고 단간 뒤주가 빗겨 배치(配置)되어 있다. 사랑채의 뒷편에는 방형으로 토담을 두르고 가묘를 설치(設置)하였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2길 42-7
  • 네이버 의암고택 검색 링크
상주 청간정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5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09-10-12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청간정(廳澗亭)은 가곡공 조예(1608~1661)가 1650년경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풍양조씨 검간공종파 자손들의 학문의 장소이자 영남유림의 인사들이 모여 시국을 논하고 시회를 열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현재 청간정에는 청간정(廳澗亭) 과 익암서당(益巖書堂) 두개의 편액이 있다. 청간정은 17세기 후반에 세워졌고, 19세기 후반에 중수된 것으로 조선 중기 정자건물의 특성을 갖추고 있고, 건립당시의 규모와 구성형식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어서 조선시대 정자건축 연구의 자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54
  • 네이버 상주 청간정 검색 링크
상주 운평리 구상화강암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6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천연기념물
  • 지정일자 1962-12-03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0점(13911㎡)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의 대부분은 동굴이나, 화석과 희귀종의 나무, 돌의 형태나 질이 특이하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현재 상주 운평리 구상화강암의 소재지는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와 상주박물관이다. 상주시청 소재지에서 약 8Km 동남쪽인 낙동면 운평리 마을 안길을 따라 계곡을 끼고 약 500여 미터 지점의 물이 흐르는 좁은 개천에 구상화강암(거북돌)이 보인다. 이 돌의 가운데 부분인 핵을 몇 겹의 껍질이 양파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고, 예부터 거북의 등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거북돌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겉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원형 모양은 13cm*10cm, 8cm*7cm, 5cm*4cm 정도이고, 적은 돌은 0.6m*0.3m, 큰돌은 1.3m*0.7m 크기로 박혀 있다. 성분은 석영, 장석, 운모, 희석, 자철석 등 잡다하게 구성된 덩어리로 유색광물과 무색광물이 층을 이루고 있다. 학자들은 구상 화강암이 형성된 연대는 1억 6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그 형성 원인은 알 수 없다. 1928년 영국의 지질학자 홈즈[A Holmes]가 처음으로 그 모양에 따라 명명한 것이나 세계적으로 그 생산이 희귀하며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조선 말엽인 1870년쯤으로 전해지고 있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산 17
  • 네이버 상주 운평리 구상화강암 검색 링크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92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87-07-16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점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목각상은 관음전의 주존불인 관세음보살상 좌상 뒷편에 있는 후불상이다. 다섯장의 목판을 잇고 위아래로 다시 한 장씩 이어 붙였으며 전면에 금박을 하여 찬란하고 장엄하다. 중앙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네보살이, 그 주위로 2대 제자인 아난, 가섭과 사천왕(四天王)을 새겼다. 그 위로는 과거3불(過去三佛)을 배치하였다. 목각탱 하단의 대좌는 연지(蓮枝) 형태로 굵은 줄기에서 갈라져 나와 각 줄기 끝에 연꽃이 피어난 것처럼 조각되었는데 이 연꽃이 연화대좌를 이루고 있다. 연잎, 연봉, 줄기 등이 강한 릴리프로 조각되어 있고 중심부의 본존은 이중으로 된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정확한 조성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사적기(寺蹟記)를 비롯한 관련 기록을 통해 1694년(숙종 20)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전화번호 054-534-6331
  • 관리기관명 남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 네이버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검색 링크
상주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99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89-04-10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최치원이 쓴 〈진감선사 비명(眞鑑禪師碑銘)〉에 의하면, 한국에 불교 범패를 최초로 전파한 고승인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귀국(830년, 大和四年)하여, “처음 석장을 상주 노악산(露嶽山) 장백사(長栢寺)에 놓았는데, 의원에 환자가 모이듯 찾아오는 이가 구름같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보면 남장사의 전신은 장백사이며, 830년 이전부터 있었던 고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남장사 보광전은 가장 먼저 건립된 불당으로 주존불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시었는데 철로 불상을 조성하였으나 개금하여 전신이 금색으로 찬연하다. 철불은 고려 시대에 널리 유행되었으며, 본 철불상은 조선 초기의 불상으로 조선 철불상 연구에 귀한 자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철불 좌상의 총고는 133㎝, 머리높이 34㎝, 무릎 폭 103㎝이다. 『상산지』사찰조에 의하면, ‘천년이나된 철불이 있어 병란이나 심한 가뭄이 닥칠 때는 스스로 땀을 흘리는 영험함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불자들에게는 이 비로자나불 숭배가 어떠했던가를 추측할 만하다 하겠다. 이 철불 좌상은 1974년 12월 10일, 지방 문화재 제57호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으로 지정되었다가 1989년 4월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 전화번호 054-534-6331
  • 관리기관명 남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 네이버 상주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검색 링크
상주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635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2010-02-2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3구
  • 조성시대 1645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불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에 따르면, 순치 2년(조선 인조 23, 1645)에 수많은 사부대중의 참여하고, 지희(智熙)스님의 증명 아래 청허, 영색, 현욱, 천휘, 나흠, 법찬 등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 제작의 수조각승 청허는 17세기 대표적인 조각승 청헌(淸憲)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이 불상은 17세기 전반기의 특징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데, 즉 양감이 강조된 방형의 큼직한 얼굴, 당당한 어깨, 넓고 안정된 무릎, 강직한 힘이 느껴지는 선묘를 추구하여 건장하면서도 평담한 형태미를 보여 주는데, 청헌의 작품과 양식적으로 흡사하다. 한편 이러한 형태미는 임진왜란 이후 자존심을 회복한 불교 재건사업과 맞물려 새롭게 대두된 양식적 경향으로 이해된다. 남장사 삼존상은 발원문을 통해 아미타·관음·대세지의 아미타삼존형식의 상으로 관음과 대세지 보살상의 착의형식에서 변화를 준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례이다. 또한 17세기를 대표하는 청허 유파에 의해 조성된 작품 중에서 비교적 연대는 늦어나 조각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대표작품으로 볼 수 있고,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조선 후기 조각사 연구의 기준자료가 되는 귀중한 작품이다.
  • 전화번호 054-534-6331
  • 관리기관명 남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 네이버 상주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검색 링크
상주 남장사 감로왕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64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2010-02-2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폭
  • 조성시대 1701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불화는 1701년 탁휘(卓輝) 등의 화승이 그린 감로도로서 18세기의 감로도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이다. 각 장면 옆에는 방제를 적어 내용을 밝히고 있어 감로도의 도상을 파악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필치가 유려하며, 채색은 분홍색과 노란색 등 밝은 채색을 사용하여 화면 전체가 밝아 보이는 한편 금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화려한 느낌을 준다. 화면을 3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칠여래와 인로왕보살, 지장보살, 관음보살을 배치하고, 중단에는 제단과 그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승려들, 하단에는 고혼들의 다양한 모습을 질서정연하게 묘사한 이 감로도의 구성은 차후 18세기 감로도의 전형을 이루었다. 남장사 감로도는 감로도 도상 변천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가가 그룹별 도상의 묘사도 뛰어나다.
  • 전화번호 054-534-6331
  • 관리기관명 남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 네이버 상주 남장사 감로왕도 검색 링크
상주 남장사 영산회괘불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00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2018-11-27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폭 1책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는 야외에서 행하는 불교의식인 영산재(靈山齋)에 사용된 불화로, 1788년(정조 12) 조선 후기 대표 불화승인 상겸(尙謙)의 주도로 총 22명의 화승(畵僧)이 참여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 괘불도는 높이 10m가 넘는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본존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주위에 권속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였고 밝고 짙은 채색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화면이 특징이다. 명료하고 능숙한 필선으로 대상을 표현하여 격조 있는 품위를 보여주고 있으며 18세기 후반 경상북도 지역의 대표적인 불화 중 하나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이와 더불어 괘불 조성 과정을 기록한 불사성공록은 괘불의 제작 경위와 참여 화승, 도상(圖像)의 사상적 근거 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료이다. 당시 괘불 제작뿐 아니라 지장도, 시왕도 등 1788년 당시 행해진 불사(佛事) 전반에 대한 기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희귀한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 불교사적 의의가 크다.
  • 전화번호 054-534-6331
  • 관리기관명 남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 네이버 상주 남장사 영산회괘불도 검색 링크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922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87-07-16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점
  • 조성시대 조선시대 후기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목각상은 보광전 주존본인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鐵造毘盧자那佛坐像) 뒷편에 있는 후불(後佛)상이다. 길죽한 판목 일곱 장으로 연결하고 위에는 길게 1판석을 놓아 모두 여덟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문(銘文)이 없어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중앙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두고 좌우로는 관음(觀音)과 대세지를 비롯하여 4구씩 3열로 비천(飛天), 권속(眷屬)을 조각하고 있다. 중앙의 좌상은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은 아미타불인데, 수인(手印)은 설법인(設法印)이고 광배는 거신화염광(擧身火焰光)이다. 관음과 대세지보살은 연화좌 위에 앉았고 다른 상들은 입상이거나 무릎을 꿇은 형태이다. 각 조각물 사이에는 보상화(寶相華)와 연화문, 연봉(蓮峰)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윗 부분에는 중앙 본존의 두광에서 솟은 서운이 피어오르면서 두 줄기로 갈라져 천상계(天上界)를 구획하고 비천이 배치되어 있다. 보광전 개금불사 인연록(普光殿 改金佛事 因緣錄)에 보면 1928년 개금한 기록이 있지만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가 없다. 전반적인 수법이나 양식경향이 대승사(大乘寺)의 목각상과 유사하기 때문에 조선후기(19세기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 전화번호 054-534-6331
  • 관리기관명 남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 네이버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검색 링크
상주 남장사 일주문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46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3-04-0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19세기말 이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남장사 입구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편액(扁額)에 ‘노악산 남장사(露嶽山 南長寺)’ ‘광서(光緖) 8년(1882, 고종 19)‘이라 기록되어 있어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양식은 일자형(一字形)에 정면 1칸(4m), 측면 1칸(2.6m) 형태로, 당초에는 자연석으로 낮게 쌓은 기단축대였으나, 근년에 장대석으로 다듬돌 쌓기를 하였고, 원기둥에 심방목(心枋木)을 받친 주심포(柱心包)에 3량가구를 걸고, 겹처마에 팔작합각(八作合角) 지붕을 한 건물로 금단청(金丹靑)을 하였다. 건물의 특색은 양쪽 둥구리 기둥 앞뒤로 방주(方柱)를 붙여 세우고, 다시 또 활주(活柱)를 고여서 중앙을 받치고 있는데, 그 주두(柱頭)가 용의 승천하는 형상이다. 전체적으로 건축 외형에서 균형감과 볼륨감이 있으며, 다포계(多包係) 건축수법도 매우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특히 보강재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재치있게 처리한 수법과 단면 결손을 없애기 위해 하나의 부재를 사용한 점이 돋보이는데, 마치 4마리의 승천하는 용이 지붕인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하다. 조선후기의 건축수법과 조각기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후기 건축 및 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전화번호 054-534-6331
  • 관리기관명 남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사)
  • 네이버 상주 남장사 일주문 검색 링크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06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2020-06-2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조선시대 초기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성발원문이나 처음 제작과 관련된 기록이 부족하여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수 없으나 귀족풍의 단정한 얼굴, 멋스럽게 주름잡은 옷깃, 무릎 앞으로 펼친 부채꼴 주름, 화려한 영락 장식, 둥글게 말아올린 보계 등으로 보아 조선초기인 15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선초기에 제작된 불상의 현존 사례가 극히 드문 현실에서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관음보살좌상은 조선 초기 불교조각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준작으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701년 중수관음존상복장발원문과 1841년에 작성된 불상 및 후불탱개금기 등을 통하여 불상의 제작 또는 중수와 관련된 사항을 파악할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으며, 조선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는 작품이다.
  • 전화번호 054-534-6331
  • 관리기관명 남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303(남장사 관음선원)
  • 네이버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검색 링크
풍양조씨 족보판목 및 보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0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8-09-2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및674판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풍양 조씨 호공파의 족보를 새긴 판목으로, 총 934판 가운데 깨지거나 훼손된 판목 260장을 제외한 674장을 보각에서 보관하고 있다.영조 7년(1731)에 처음으로 간행하였고, 영조 36년(1760)에 두번째로 간행하였으며, 순조 26년(1826)에 세번째로 다시 간행하였다.정교한 새김과 족보체제로 볼 때, 당시 족보를 출간하는 기술적인 경향과 조선시대 판목인쇄의 실재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로 여겨진다. 보각은 원래 남장사에 있던 것을, 1924년 현재의 남장사 경내로 옮겨 ‘조씨보각’이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
  • 전화번호 054-532-5245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4길 25
  • 네이버 풍양조씨 족보판목 및 보각 검색 링크
석장승(남장사)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3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민속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2-02-2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장승은 남장사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석장승(石長丞 )이다. 남장사는 832년(興德王 7)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柏寺)라 하였으며 1186년(명종 16) 각원(覺圓)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그뒤 여러 차례 중건과 중창이 이어져 현재에까지 전하고 있다. 이곳에는 관음선원목각탱(觀音禪院木刻幀 :보물 제923호)과 보광전목각탱(普光殿木刻幀 : 보물 제922호), 毗盧遮那鐵佛坐像 등이 전해지고 있다. 또 극락보전의 현판에 1856년(哲宗 7)에 해당하는 함풍(咸豊)의 연호가 기록되어 있어 이 시기에 사찰이 융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승은 마을 수호신, 이정표의 기능을 가진 민속신앙 문화재이며 사찰입구에 세워 잡귀의 출입을 막고 사찰 성역내의 금지된 규제와 풍수비보를 지켜주는 수문과 호법의 신장상이라 한다. 그 복부에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하였고 임진구월립(壬辰九月立)이라는 명문(銘文)이 있는데 임진은 극락보전의 현판기록과 대조하여 1832년(순조 32) 혹은 1892년(고종 29) 중의 하나라 추측된다. 처음부터 큰 바위를 다듬어 장승을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형태의 바위를 골라 소박하게 손으로 다듬었다. 보통은 왕방울 같은 눈망울은 둥글게 하는 것이나 이 장승은 위로 치켜뜬 모양이며 콧날도 없이 펑퍼짐한 주먹코는 매우 크게 되어 있다. 입은 야무지게 다물고 있지만 형식적인 표현이라도 송곳니의 표시가 있고 수염은 마치 옷주름을 다듬은 듯하게 형태만 표현하였다. 머리는 상투라고는 보기 어려운 마치 불상의 육계와도 흡사하게 되어 있으며 귀는 표현하기는 했지만 모양만 나타나 잘 알아보기 힘들다. 얼굴전체는 바위 생긴대로 다듬어서 한쪽으로 일그러져 있다. 다른 석장승과는 달리 균형도 잘 맞지 않고 구체화된 표현도 없으나 원초적인 소박함을 지니고 있다. 높이는 1.86m로 민간신앙과 불교가 어우러진 신앙예술품이다.
  • 전화번호 054-534-6331
  • 관리기관명 남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산63-6
  • 네이버 석장승(남장사) 검색 링크
상주 청죽 성람 묘갈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69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21-12-20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1702년 이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비는 1702년 이후에 세워진 성람의 묘갈이다. 화강석 대좌와 비신 그리고 이수 부분으로 구성되며, 비신의 크기는 높이 166㎝, 폭 74㎝, 두께 19㎝이다. 명문은 幷序, 追記 부분, 子孫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문은 1650년에 이루어졌고 1701년에 權尙夏가 추기하였다.성람(1556∼1620)은 의료 지식을 갖춘 주목할 만한 인물로서, 1599년 임란 이후 향촌민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존애원 설립 등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비갈의 이수 부분에 여의주 상단 화염문과 하단 여의두문이 함께 시문된 것은 드문 예이다.이 비의 내용은 문집 및 파보 등에 전하고 있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갈 인물의 중요성, 설립시기, 미술사적 의미를 고려하여 문화재자료로 지정한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창녕성씨 청죽공파 종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 94-1
  • 네이버 상주 청죽 성람 묘갈 검색 링크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7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98-06-29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폭
  • 조성시대 조선시대(1688)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남장사(南長寺)가 830년 이전에 창건되었듯이 북장사(北長寺)도 거의 같은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다. 본디 北長寺는 극락보전, 화장전, 대향로전, 원통전 등 20여 동의 건물과 상련암 등의 많은 암자를 둔 대찰이었으나, 현재는 명부전, 극락보전, 산신각, 승방 등이 남았을 뿐이다. 북장사 괘불은 영산괘불로, 고운 명주에 채색하여 중앙에 석존을 모시고 좌우에 불보살들의 입상을 배치하였다.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전체의 색채가 생생하다. 1688년(숙종 14)에 조성된 것으로 길이 12m, 폭 8m의 거대한 작품이며, 연대도 비교적 오래고 조성 필치도 주목되는 귀중한 괘불탱화이다. 구전에 의하면, 가뭄이 심할 때 북장사 괘불님이 내려오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믿었으며, 이런 믿음에 의해 1960년(음 7. 1) 한발이 심할 때 실제 상주 뒷내(後川) 모래사장에 북장사 괘불을 내다 걸고 기우제를 지낸바도 있다. 또한 괘불에 얽힌 전설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옛날 당승(唐僧 혹은 異僧)이 와서 이 괘불을 자청하여 그릴 때 3일동안 문을 닫고 잡인의 출입을 금하라고 명하였다. 셋째 날이 되어 의아심을 가진 승려가 문틈으로 들여다 보니 화승은 보이지 않는데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 열심히 탱화를 그리고 있었다. 파랑새는 승려가 엿보는 것을 눈치채고는 홀연히 사라졌는데 불탱을 살펴보니 어깨부분 한 곳이 미완성이었다고 전한다.
  • 전화번호 054-533-5103
  • 관리기관명 북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북장1길 317
  • 네이버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 검색 링크
상주 북장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1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7-08-3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3구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극락보전 수미단 위에 모셔진 3軀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다. 중앙에는 아미타여래좌상, 그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좌상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좌상이 협시(挾侍)하고 있다. 크기는 180∼190㎝에 달하는 중형의 불상으로서 모두 나무로 조성하여 도금(鍍金)한 상태이며, 별도로 제작되어 몸체에 삽입된 두 팔을 포함하여 전체가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조성발원문은 확인할 수 없지만, 『北長寺事蹟記』를 통해 1676년(숙종 2)이라는 제작시기가 확인된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2m에 달하는 크기의 불상이 손상된 곳이 거의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17세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전화번호 054-533-5103
  • 관리기관명 북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북장1길 317(북장사)
  • 네이버 상주 북장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검색 링크
상주 북장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46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7-08-3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24구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명부전에 모셔진 24軀의 목조상으로, 중앙의 지장삼존을 비롯하여 좌우에는 10구의 시왕상(十王像), 귀왕(鬼王 2구), 판관(判官 2구), 사자(使者 2구)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금강역사(2구)는 입구 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3구의 동자상은 직지성보박물관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1689년이라는 제작시기와 조각승을 알 수 있는데 17세기 후반의 조각승 지현(智玄)을 비롯한 8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였다. 문자기록이 잘 남아 있고 작품의 완성도 또한 뛰어나며 24구에 달하는 像이 손상된 곳이 거의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17세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전화번호 054-533-5103
  • 관리기관명 북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북장1길 317(북장사)
  • 네이버 상주 북장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검색 링크
북장사 삼층석탑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3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91-03-25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신라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원래는 상주 인평동에 있던 탑으로, 우암산 정상 부근에 흩어져 있었던 것을 용흥사로 옮겨 관리하였다가, 1998년 현재의 자리인 북장사 경내로 옮겨 북장사삼층석탑으로 이름을 바꾸어 새로이 복원하여 세웠다.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원래 기단 일부와 탑신의 3층 몸돌 1개, 지붕돌 3개만 남아 있었다. 아래·위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갔으며,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두었다.남아있던 기단과 지붕돌 등 부재들의 양식상 특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전화번호 054-533-5103
  • 관리기관명 북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북장1길 317(북장사)
  • 네이버 북장사 삼층석탑 검색 링크
상주 구 내서면 사무소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7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등록유산
  • 지정일자 2006-09-19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1층.229㎡)
  • 조성시대 1952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건물은 1952년에 건축된 목골 모르타르조의 단층 맞배지붕 면사무소이다. 남북방향으로 길게 배치된 건물형태, 일식기와에 ┼자형의 맞배지붕을 취한 지붕면, 건물 중앙에 현관 포치(porch)를 앞뒤로 둔 구성, 콘크리트 기초 위에 나무구조로 된 평벽 모르타르 마감 등이 특징적이다. 정면 벽면은 중앙부의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동일한 형태의 창문을 설치해 대칭성을 강조하였으며, 벽면은 샤시 미서기창을 설치하였다. 광복이후 근대기의 관공서 건축의 양태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 건축·조형적 가치와 지방행정사적 가치가 크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신촌2길 10-5
  • 네이버 상주 구 내서면 사무소 검색 링크
상주 옥동서원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32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사적
  • 지정일자 2015-11-10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4,545㎡ 1필지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옥동서원은 1518년(중종 13)에 횡당(堂)으로 창건되어, 1789년에 사액을 받았으며, 1871년 서원 철펴령 시 훼철되지 않은 서원으로서 방촌(尨村) 황희(黃喜, 1363∼145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1580년(선조 13)에 영당(影堂)을 건립하여 향사(享祀)를 지냈다. 1714년(숙종 40)에 전식(全湜, 1563∼1642)을 배향하였고, 1715년(숙종 41)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하였다. 1783년(정조 7) 황효헌(黃孝獻)과 황뉴(黃紐)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1789년(정조 13)에 사액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경덕사·온휘당·청월루·전사청·고사(雇舍) 등이 있다. 경덕사는 향사(享祀)를 지내는 사우로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중앙은 마루로 되어 있고, 좌우측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으며, 황희를 주벽(主壁)으로 좌우에 전식·황효헌·황뉴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온휘당은 원내의 모든 행사와 유림 회합 및 학문 토론 장소인 강당으로 정면 5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누문(樓門)인 청월루는 정면 5칸·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2층 누각(樓閣) 건물이다. 1층은 출입문이고, 2층은 중앙이 마루로 되어 있으며, 난간을 두르고 있다. 전사청은 향사(享祀) 때 제수(祭需)를 장만해 두는 곳이다. 옥동서원은 17~18세기 서원 건축에서 나타나는 강학 쇠퇴와 향사 강화의 배치와 특징이 잘 남아있고, 역사 문화 경관 요소가 현재까지도 기록과 함께 잘 전승되어 오고 있어 인문 역사적, 건축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서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 전화번호 054-533-1077
  • 관리기관명 옥동서원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2길 29
  • 네이버 상주 옥동서원 검색 링크
금돌성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3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5-08-05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곽(3227107㎡)
  • 조성시대 삼국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백화산 정상부의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쌓은 성으로, 신라 김유신 장군이 백제군과 격전한 곳이라고 전한다.성은 완전하게 무너진 것을 1978년에 국방유적 보수사업으로 80m의 성벽을 복원하였다. 무너진 성벽은 약 4m 폭으로 쌓여 있었으며, 총 연장 둘레는 2∼3㎞이다. 골짜기를 내려오는 성벽의 일부는 약 30㎝ 정도의 아랫부분만 남아있다. 복원된 성벽은 밑부분의 폭이 360㎝이며, 150㎝ 정도의 높이에 군사들이 서서 활동할 수 있는 단을 설치하고, 거기서 다시 아랫폭 125㎝, 윗폭 85㎝의 성벽을 150㎝ 높이로 쌓아 올렸다.역사·지리적으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세력이 서로 맞부딪친 곳에 있으며, 삼국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성이라 할 수 있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개인(7)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산98
  • 네이버 금돌성 검색 링크
상주 병풍산 고분군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5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98-04-1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592378㎡
  • 조성시대 삼한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병풍산의 서북쪽 구릉일대에 분포한 대형 돌방무덤들이다. 사벌국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상주지역에서 형성범위나 규모가 가장 큰 무덤이다. 무덤이 있는 병풍산의 정상부에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병풍산성이 축조되어 있어, 무덤을 만든 세력의 힘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아마도 그 세력은 사벌국의 중심세력이나 삼국시대 상주지역의 지방 유지세력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병풍산 무덤들은 원삼국시대의 사벌국의 실체와 그 후에 나타난 세력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병성동 산24
  • 네이버 상주 병풍산 고분군 검색 링크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72-12-29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통일신라시대 추정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해 두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경우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매달아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보통 당은 없고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은 두 기둥만 남아있다.복룡동 도로변의 논 한가운데에 남아 있는 이 당간지주는 높이 마련된 돌단 위에 서 있다. 전체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약간 굵어지고 있으며, 아랫부분은 두툼해져 투박해 보인다. 두 바깥면의 양 모서리를 부드럽게 다듬어 놓았을 뿐 각 면에는 조각을 두지 않았다. 기둥의 아랫부분에 살짝 금이 가 있고, 기둥사이에는 당간을 받치던 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그 윗면에 커다란 홈을 두어 당간을 꽂아 두도록 하였다. 꼭대기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깎아 다듬어 놓았고,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네모난 홈을 파놓았다.돌을 다루는 수법과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인 것으로 추측되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석불좌상이 이 당간지주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07-2
  • 네이버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 검색 링크
상주 복룡동 유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47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사적
  • 지정일자 2007-05-31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60,068㎡(57필지)
  • 조성시대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복룡동 283-7번지 일원은 주택공사의 아파트 주택건설부지였던 복룡 3지구와 개인 건설업체인 유성에서 계획한 유성 CM지구로 2004년부터 2005년에 걸쳐 시·발굴조사를 실시한 곳이다. 3지구 건너편의 2지구 역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발굴조사를 하여 청동기시대 주거지 4동, 통일신라~조선시대 건물지 22동, 구상유구 16기 등을 비롯한 총 314기의 유적 및 동시대의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복룡 3지구는 적심 17기, 수혈 48기, 구상유구 6기, 석렬 2기, 와열 1기, 주혈 1기를 비롯한 총91기의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유성 CM지구에서는 건물지 7동, 우물 24기, 구상유구 10점 등 총 569기의 유적 및 유물이 확인되었다. 땅속에 묻혀 있던 체계적인 계획도시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경주에 이은 고대도시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상주복룡동유적지에는 청동기시대를 포함한 조선시대까지의 생활유구가 전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상주시 고대도시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으며, 당대의 서민생활상을 복원, 연구하는데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생활유적지이기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83-7
  • 네이버 상주 복룡동 유적 검색 링크
상주 조공제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4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2002-07-15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3,369㎡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조공제는 趙秉老(조병노) 목사(재임기간 1871. 9∼1873. 10)가 재임 당시 치농(治農) 목적으로 쌓은 제방(길이 370m 높이 2.5m 폭 5m)으로 밤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제방은 일찍부터 존재하여 栗수(율수)라고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정기룡장군이 상주성 탈환시 군사를 숨겨 두었다가 도망가는 왜군을 섬멸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시내로 들어가는 폭 20m도로가 관통되어 손상되긴 했지만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 되는 역사적인 곳이다. 제방 남쪽 끝에는 조공제비가 있는데, 비문의 내용을 보면 .... 동편은 물길이 허하여 가둘 수 없음에 흙을 쌓고 나무를 키우게 하였다. .... 일꾼들에게 명하여 돌을 실어다 쌓도록하니 그 제방이 마침 성과 같았다 ....고 적어 제방의 축성 내력을 알수 있다. 또 『상산지 임수조(林藪條) 』에 율수는 주 동쪽 5리에 있다. 옛 이야기에 邑基(읍기) 서쪽에 있는 산의 형상이 지네와 같아 이를 제독하기 위하여 서로 바라보는 곳에 밤나무를 심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제방에 밤나무를 심은 것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서쪽에 있는 산이 지네의 형상이라 조공제의 자리에 지네가 싫어하는 밤나무를 심은 것으로 볼 수 있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504-1
  • 네이버 상주 조공제 검색 링크
조정 임진란 기록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00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89-05-23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7책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정(趙靖, 1555-1636)선생의 자는 안중(安仲), 호는 검간(黔澗)이며 본관은 풍양이다. 임란에 창의하여 국토수호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상주.함창은 물론 경상도, 충청도 지역의 의병 및 관료들의 활동, 백성들의 동향과 교통상, 왜적의 갖가지 만행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기록하여 상주 임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제공되고 있다. 이 일기의 내용은, 1592년(임진) 4월 14일 일본군의 제1진 1만 8천명은 고니시를 대장으로 배를 타고 부산포에 상륙하여 부산성과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한양을 향해 북진하였다. 그 달 19일에는 왜군 제2진 2만 2천명이 가또오를 대장으로 하여 부산에 상륙하고 신령 방면으로 북진하였고, 같은 날 제3진 1만 1천명이 구로다를 대장으로 하여 김해 죽도에서 상륙하고 김해성 및 창원, 영산(靈山), 창녕을 점령하고, 한 패(우종대:右從隊)는 무계(茂溪) 성주를 거쳐 25일에 개령 금산(金山)에 당도하니 이 고장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다른 한 패(좌종대:左從隊)는 창녕에서 갈리어 초계(草溪) 합천 거창 지례(知禮)를 거쳐 금산에 당도하여 우종대와 합류하고, 금산(지금의 김천시 삼락동)에서 대열을 가다듬고 추풍령을 넘어 북진하려 하였다. 제3진에 뒤를 이어 제4진 1만 4천명 가운데 모리가 일대를 이끌고 금산에 들어와 제3진고 합류했는데 당시 이 지방(금산)에는 1만 5천의 왜군이 진을 치고 3일간을 머물고 있었다. 4월 28일에는, 방어사 조경, 조방장 양사준, 돌격장 정기룡, 비장 장지현 등이 방위하는 추풍령을 돌파하고 북진하였다. 5월초에는 왜군 제6진이 1만 5천명이 고바야가와를 대장으로 제3진의 뒤를 이어 금산에 머물다가 곧 선산으로 옮아갔고, 금산에는 제6진의 일부인 2천 5백명(대장 다찌바나)과 또 다른 9백여 명이 왜군이 남아 있었다. 6월 12일에는 왜군 제7진 3만명을 이끌고 모오리가 대장으로 상주에 잠시 머물었다가 개령에 진을 치고 주둔하였다. 개령의 왜군 진지는 지금의 개령면 동부동을 중심으로 주위 3km에 걸쳐 2중 목책으로 둘러싸고 목책 사이와 바깥에는 깊은 참호를 파서 아군의 공략을 막았다. 금산과 선산에 머물러 있던 제6진 1만 5천의 고바야가와군은 원래 전라도 점령을 목적으로 한 부대로서 상륙하고 창원에 머물면서 남원을 거쳐 전라도로 침입하려다가 의령에서 곽재우 의병군에게 길이 막혀 성주를 거쳐 금산으로 들어 온 것이다. 금산 선산 성주 지례 등지에 흩어져 머물고 있으면서 전라도 침입을 노리고 있다가, 부대를 둘로 나누어 7월 10일에 1대는 지례를 거쳐 거창으로 가다가 우두령(牛頭嶺:김천시 대덕면과 거창군 웅양면 사이 고개)에서 의병대장 김면에게 패하여 금산으로 퇴각하였고, 1대는 무주를 거쳐 금산(錦山)에서 전주로 향하다가 도절제사 권율에게 패하고 도주한 왜졸은 금산에서 다시 대열을 가다듬고 무주를 거쳐 지례에 당도한 고바야가와의 왜군을, 이 고장 충신 의병대장 여대로, 의병장 권응성, 김해부사 서예원, 중위장 황응남 등 의병에게 포위되어 전멸되었다. 7월에서 9월에 걸쳐 개령에는 제3진과 3만군과 제6진 1만군의 4만이 주둔하고 있으면서 이를 본거지로 선산·성주·금산·지례·무주 등지에 출몰하면서 앞서 말한 추풍령전투, 우두령전투, 지례전투, 상좌원전투 등 규모 큰 전투 외에도 상좌원 하로(賀老)·부상고개(扶桑峴)등지에서 소규모 전투는 끊일 날이 없었다. 개령에 주둔한 일본군은 이듬 해 2월 12일 명나라 원군이 들어와 평양 등지에서 왜적을 무찌르면서 남하한다는 소식을 듣고 철수하기까지 수시로 이 고장의 산간벽지까지 출몰하여 납치 방화 약탈 강간 등 가진 횡포를 부렸으며, 특히 그들에게 잡혀 욕보기에 앞서 자결하여 정절을 지킨 부녀들이 이 고장에만도 수 없이 많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 왜군 14만이 재침했는데, 모오리를 대장, 가또오를 선봉장으로 한 5만군병의 소속 일부 부대가 9월 18일 성주를 거쳐 금산에 들어왔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보다 난폭하고 무자비하여 들 곡식에까지 불을 지르고 산골짜기에까지 찾아다니며 사람을 해치곤 했다. 봉계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
  • 네이버 조정 임진란 기록 검색 링크
조정 종가 문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004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89-05-23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0종62점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검간(黔澗) 조정(趙靖, 1555~1636) 선생 종손가에 소장된 고문서와 전적이다. 고문서는 명종 9년에서 현종 11년 사이에 작성된 교지와 분재기 등 3종 55점이며, 전적은 조선 초기 간행본인 삼봉선생집(三峰先生集), 필원잡기(筆苑雜記), 논어언해(論語諺解), 송조 명현 오백가 파방 대전문수(宋朝 名賢 五百家 播芳 大全文粹) 등 모두 7종 7책이다. 이 가운데 분재기는 조씨 문중에서 소유하고 있던 토지와 노비의 규모, 형성 과정, 상속 등을 적은 자료로서 서지학에는 물론 교육 문화사 연구에서도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필원잡기(筆苑雜記)는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의 작품으로 국문학 연구에 귀한 자료로 널리 알려진 명저이기도 하다. 소유자가 상주시로 기증함에 따라 현재 상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
  • 네이버 조정 종가 문적 검색 링크
상주 석조천인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66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80-06-11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2구
  • 조성시대 통일신라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 석조 천인상은 화강암 판석 두 장에 부조된 2구의 천인상이다. 한 상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주악천인상이고, 다른 하나는 연꽃을 받들어 공양을 연주하는 공양천인상이다. 둥근 얼굴에 정제된 이목구비의 표현이나 손 등에 나타나는 사실적인 묘사는 균형 잡힌 몸매와 세련된 자태 등과 함께 작품의 우수성을 나타내고 있다. 측면으로 향하고 있는 얼굴이나 동감 있는 자세, 여기에 활달하고 구불거리며 휘날리는 천의의 묘사에서도 역시 운동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신체의 양감이 줄어들고 평판적으로 변한 모습이나 천의를 이루는 각 선에서 조금 경직된 면도 찾아진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들은 신라 하대에 조성된 불상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따라서 이 상도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남산공원(신봉동 산2-1번지)에 있었으나 2007.06.20일자로 상주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
  • 네이버 상주 석조천인상 검색 링크
정기룡 유물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66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80-08-2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5점
  • 조성시대 조선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임진왜란 때 활약한 매헌 정기룡(1562∼1622) 장군이 남긴 유물들이다. 정기룡장군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이다. 1580년 향시에 합격하고, 선조 19년(158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때 왕명에 의해 초명 무수(茂壽)에서 기룡(起龍)으로 개명하였다. 1591년 훈련원 봉사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의 벼슬로 거창싸움에서 왜적 500여 명을 격파하고, 곤양(현, 진주)의 성을 지키는 장이 되어서는 왜적이 호남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또, 상주가판관이 되어 10월에 상주 도임, 11월에 화공(火攻)으로 상주성 탈환의 전공을 세웠다. 1593년 전공으로 회령부사, 1594년에 상주목사가 되어 통정대부에 올랐다. 또한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토왜대장이 되어 고령에서 왜군을 대파하고, 적장을 사로잡는 등 큰 전과를 올렸으며, 이어 성주, 합천, 초계, 병마절도사에 승진하여, 경주 울산을 수복하였다. 승록대부로서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의 직을 수행하다가 1622년 통영 진영에서 순직했다. 숙종조에 충렬사(忠烈祠)에 상주 판관 권길과 함께 제향 되었으며, 묘소와 사당은 사벌면 금흔리에 있다. 1966년 경남 하동에 경충사(景忠祠)가, 1970년 말에 지금의 충의사가 건립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것은 옥대 1개, 신패 1폭, 유서 1매, 교서 2축, 교지 1매 등이다. 이 외에 『매헌실기(梅軒實記)』목판 58점과 그의 가족에게 내린 교지 19점 등이 유물로 남아 있다. 관련 유물은 충의사에 보관하고 있었으나, 2007년 9월부터 상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장군은 상주 태생은 아니나, 임란에 이미 모부인을 사벌 매호로 모셨고, 사후 묘소 및 충의사가 상주에 있어 장군의 위국충절은 상주사에서 확고한 지위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
  • 네이버 정기룡 유물 검색 링크
상주 증손향약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1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6-12-1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책
  • 조성시대 1692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향약은 전래된 각종 향약의 집대성이며 상주 남부 지방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현장성있는 향약으로 제정한 일명 남촌 사면 향약(南村四面鄕約)이라고도 부른다. 사면은 상주 남쪽 지방의 청남(靑南),청동(靑東),공서(功西),공동(功東)으로 현재의 청리,공성,외남 일부가 이에 속하다.처음 이 향약은, 1634년 상주 목사 김상필(金商苾)이 월간(月澗) 이전(李)과 수암(修巖) 유진(柳袗)의 두 선생에게 약정을 맡아보게 하여 시행하였던 것이다. 책의 내용은, 책머리에 범례가 있어 여기에는 여씨 향약(呂氏鄕約) 범사조가 있고, 다음에는 퇴계 선생(退溪先生)의 약조(約條), 다음에는 월간 입규(月澗立規) 및 향입의(鄕立義)가 있다. 또, 포산 립지(苞山立址)와 퇴계 선생의 향립약조서 포산 규약식, 포산 규약발(苞山規約跋)이 있고 5행간을 비우고 신증 약조와하인 약조(下人約條)가 있다. 끝으로 이재성(李齋聖)이 임신년에 쓴 남촌 사면 향약지(南村四面鄕約枝)가 있는데 임신년은 1692년(숙종 18)으로 추정된다.『증손향약』(增損鄕約)은, 당시까지 전해 오던 한중(韓中)여러 향약을 집대성함과 동시에 상주 지방 특유의 제 사정을 감안하여 시행 가능케 중보하여 만들었다는 가치성이 있다. 향약의 궁극 목적은, 약정인끼리 상부상조하며 향풍을 규찰하여 민속을 순후케 하려는데 있었던 만큼 이런 미풍양속은 현재에도 필요하리라 본다.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
  • 네이버 상주 증손향약 검색 링크
월간 창석 형제 급난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1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6-12-1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책
  • 조성시대 1604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월간 이전 선생과 창석 이준 선생 형제의 우애를 묘사한 그림으로, 가로 21.5㎝, 세로 29㎝이다.임진왜란 다음해인 선조 26년(1593) 봄, 병으로 거동이 힘들던 동생 창석 선생이 형인 이전 선생에게 피신하여 가문을 보존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형은 동생의 부탁 대신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동생을 업고 백화산 정상으로 피해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후에 창석 선생이 명나라에 가서 중국인에게 이야기를 하니 그들이 감동하여 화공을 시켜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그림은 백화산을 배경으로 왜적이 산 아래 진을 치고 창검을 들어 형제에게 다가오자 형이 아우를 업고 떠나는 장면, 업고 가던 아우를 내려놓고 적들에게 활을 겨누는 모습, 산정상을 향해 아우를 업고 달리는 모습 등이 묘사되어 있다.그림이 완성되자 창석 선생은 주위의 유명인에게 시문을 청하여 부록으로 그림 뒤에 부치었다. 비록 중국인 화공이 그린 것이긴 하나, 그림만으로도 지극한 형제애를 느끼게 해주며, 그림 뒤의 선비들의 시문 역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다.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
  • 네이버 월간 창석 형제 급난도 검색 링크
노소재 문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1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6-12-1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0종7책3장1폭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문적의 내용은, 노소재 문집 본초을중 일책으로 체제는, 세로 24cm 가로 14.2cm의 한지 장본, 심침장법 총 45정행초서로 평균 매면 8행, 1행 16자이다. 내용은, 소재선생이 을사 사화로 순천, 진도 등지로 유배되던 1548년부터 수년 간 유배지에서 쓴 시부를 수록하였는데, 무신 정월 난고 21수를 비롯하여 이월난고 40수와 옥주 2천언 등이다. 이는, 소재 문집 본초 전 7권 중 유일하게 남은 을중본이다. 소재 노수신 선생의 자는 과회요 호는 소재며 벼슬은 영의정, 시호는 문간공이다. 선생의 학문은, 탄수. 환훤당.점필재에 연원을 둔 유학자로서 진도 유배 19년 동안에 거의 완성되었으며, 유배 생활의 깊은 침잠 속에서 그의 문학 역시 웅혼하면서도 깊이 있는 세계를 구축했다고한다. 이기론에서는 퇴계 선생과 관점을 달리 했으나, <숙흥야매잠> 주해에 대해서는 퇴계 선생도, “우리 동방에 사도가 없어지지 않는한 이 주서가 반드시 후세에 전하리라”고 극찬하였다. 선생은 주자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양명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불리에도 밝았고 문장과 서도에도 일가를 이룬 분이다. 세칭, 유성룡, 정탁 선생과 나란히 영남의 삼대가로 알려졌으며 문학에서는 정사룡, 황정욱 선생등과 관각삼걸로 불렸다. 특히, 시에서는 조선의 두보로 알려질 만큼 두시에 정통하였다 한다.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
  • 네이버 노소재 문적 검색 링크
김선치의 벼루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384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06-06-29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점
  • 조성시대 14~15세기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벼루와 벼루집은 낙성군(洛城君) 김선치(金先致, 1318∼1398)의 유물로 벼루의 뒷면에 ‘김선치 년십이(金先致 年十二)’라 음각하고 수결(手決)하여 이는 고려 충숙왕 16(1329)년에 해당된다. 그 후 4백여 년이 지난 뒤 1762년(영조 38)에 예곡(禮谷, 문경시 신흥동)의 이연원(李延元) 우물에서 발견되자 동래의 김덕장(金德章)이 가져갔다. 그 후 덕장이 죽자 동생 현장이 수소문 끝에 14세손 담(湛)을 찾아 전해 주었다. 담은 문경현감 김재악(金載岳, 재위 1764. 6∼ 1768. 12)에게 보여주니 ‘기이하다’하여 특별히 1768년 9월에 벼루집을 제작해 주었다. 벼루집은 목질이나 양식이 당대의 것으로 인증된다. 특히, 고산석(高山石)인 이 벼루는 고려시대의 양식으로, 이를 두고 조선시대 당시의 문사(文士) 30여 명이 기(記)·시(詩)·가(歌)·행(行) 등으로 연기(硯記) 즉, ‘낙성군 선조 고연운(洛城君 先祖 古硯韻)’을 남겨 그 정신 문화적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하겠다. 선생은 본관이 상산(商山)이고,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판종부시사 록(祿)의 아들이며, 포은 정몽주의 스승인 정당문학 김득배(金得培)의 아우로 문무를 겸한 고려 충신이다. 여말 홍건적의 난 때 큰 공을 세웠으며, 김득제(金得齊)와 더불어 세칭 3원수(三元帥)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
  • 네이버 김선치의 벼루 검색 링크
경상도영주제명기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03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2019-10-31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2종2책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는 고려~조선시대 경상도로 부임한 관찰사 명단을 수록한 총 2종 2책의 선생안으로, 각 1책씩 국립경주박물관과 상주향교 소장본(현 상주박물관에 위탁보관)으로 구성되었다. ‘경상도영주제명기’는 조선 초기의 문신인 하연(河演, 1376~1453)이 역대 경상도지역 관찰사의 명단을 1426년(세종 8) 처음 필사하여 제작한 이후 계속 추록되어 1718년(숙종 44) 관찰사로 부임한 이집(李)까지 기록되었다. 이렇듯 640년간 동일직명의 명단을 수록한 선생안이 전래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하연의 서문(序文)에 의하면, 자신이 관찰사로 부임한 이듬해(1426년) 역대 전임 경상도 관찰사의 명단을 확인하고 1078년부터 하연 본인이 부임하기 전인 1423년(세종 5)에 이르기까지의 역대 관찰사의 명단을 새로 작성하였다고 한다. 이때 하연이 만든 ‘경상도영주제명기’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본이며, 표제는 ‘당하제명기(棠下題名記)’로 되어 있다.상주향교 소장본 ‘경상도영주제명기’는 하연이 제작한 국립경주박물관 소장본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1622년(광해군 14) 김지남(金止男)이 제작한 것이다. 표제는 ‘도선생안(道先生案)’이다. 여기에는 1078년 부임한 이제원(李齊元)에서부터 1886년(고종 23)에 부임한 이호준(李鎬俊)에 이르기까지 추록되어 있어 8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한 역대 인물들의 현황을 알 수 있다. ‘상주목치(尙州牧置)’라는 기록을 통해 상주목에 보관했던 책이었음이 확인되며, 고려~조선시대에 걸친 역대 경상도 관찰사 명단을 파악하는데 필수적인 자료이다.이처럼 국립경주박물관 및 상주향교 소장 2종의 ‘경상도영주제명기’는 15세기 최초 제작 이후 19세기까지 추록되어 자료의 연속성이 있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관찰사 선생안 중 시기적으로 가장 이르고 내용 및 형태적으로도 가장 완형(完形)에 가깝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상주박물관)+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국립경주박물관)
  • 네이버 경상도영주제명기 검색 링크
낙상동 폐탑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5-08-05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신라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폐탑은 당초 상주 낙상천에서 사벌면 금흔리(흔국마을)로 가는 석문정 고개에서 우측 산록으로 50m 지점에 있었다. 이곳을 사람들이 절골이라 부르며 과수원의 남향 45도 경사진 비탈에 탑재가 흩어져 있었던 것을 1982년 4월 19일에 처음 발견하였다. 중부 내륙고속도로 제13구간에 속하여 2000년 5월 23일 임시로 충의사에 옮겨 놓았다. 잔존하는 부재는 대부분 옥개석이며 낙수면 일부는 잘려졌고, 옥신을 따로 만든 것이 보이나 상층으로 구성된 옥개석은 탑신이 붙어진 채 치석(治石)하였다. 지상에 나타난 석탑 재료는 정확히 전모를 알 수 없으나, 5층탑으로 추정되며 매몰되거나 반출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탑은 법당 남향으로 건립되고 정남향 언덕에 탑이 세워져 부처님과 탑과 태양이 일직선으로 대칭되게 배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 주변에는 단선문의 통일신라 시대 와편과 어골문 와편이 많이 산재한 것으로 보아 신라부터 고려 시대까지는 존속했던 절의 탑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전화번호 054-537-6753
  • 관리기관명 상주박물관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684(상주박물관 야외전시실)
  • 네이버 낙상동 폐탑 검색 링크
상주 목가리 석조관세음보살입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43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03-04-14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부처는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지 않으나 머리에 쓴 보관은 다른 부처에서 찾아보지 못한 양식이며 중앙에 부처 1구를 조각한 것 등 특이점이 발견된다. 불상의 양식과 불상 주변에서 확인되는 자기편과 기와편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려 전기의 관세음보살상은 대부분 협시불(挾侍佛)이거나 좌불이지만 이 불상은 단독불이고 입상이라는 특징이 있다. 불상의 전체높이는 244cm이며 몸둘레는 215cm이다.
  • 전화번호 054-541-004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목가리 산 6
  • 네이버 상주 목가리 석조관세음보살입상 검색 링크
정기룡장군유적(충의사)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74-12-10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 조성시대 1981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곤양 정씨의 시조인 정기룡(1562∼1622) 장군의 무덤가 있는 유적이다.정기룡은 선조 19년(1586)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창 등 여러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러 호남을 지켰다. 그후 토왜대장,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다.이 유적은 1977년 정부의 호국선현유적정화사업계획에 따라 무덤과 그 주변을 깨끗이 하고,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와 유물관을 지은 것이다. 이곳에는 송시열이 글을 짓고, 이세재가 쓴 신도비가 있다.
  • 전화번호 054-537-6066
  • 관리기관명 충의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충의로 230
  • 네이버 정기룡장군유적(충의사) 검색 링크
상주 퇴강성당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2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07-05-07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2동
  • 조성시대 1956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퇴강성당(退江聖堂)은 조암산 자락 아래 낙동강 옛 퇴강(물미) 나루터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상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교당이다. 경북 북부지역 천주교 신앙의 산실이며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대변하는 교당으로 천주교회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56년에 건립된 본당은 입면과 평면에서 고딕양식의 특징을 지닌 근대 건축물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다. 성주의 가실본당, 김천의 본당과 더불어 경북의 천주교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전화번호 054-536-3789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퇴강물미길8
  • 네이버 상주 퇴강성당 검색 링크
화달리 삼층석탑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1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63-01-21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통일신라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탑은 전체적으로 낙수면이 평박하고 사방 합각의 선이 예리하며 직선을 이룬 추녀에 사우전각의 반전이 강경하여 경쾌한 탑신부를 이루고 있다. 탑신부에 있어서 옥개 받침이 각 층이 동일하지 않고 삼층은 사단으로 줄어 들었으며, 또 옥신 받침과 기단 갑석 상면의 탑신 받침도 1단으로 약화된 점은 8세기에 조영된 정연한 석탑형으로 시대가 하강된 9세기경에 조성된 것이라 추정된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화달1길 2
  • 네이버 화달리 삼층석탑 검색 링크
전사벌왕릉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5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77-12-29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8256㎡)
  • 조성시대 신라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사벌국은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위치하였던 삼한 소국 중의 하나로, 일명 사량벌국이라고도 한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나라는 본래 신라에 속하여 있었으나 점해왕 때 갑자기 배반하여 백제에 귀속하였다 한다. 그러자 우로(于老)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여 사벌주를 설치하였다. 그 뒤 신라 54대 경명왕의 여덟 왕자 중 다섯 번째 왕자인 언창이 사벌주의 대군으로 책봉되어 사벌국이라 칭하고 11년간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그 뒤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공을 받아 929년 패망하였다. 상주지방에서는 B.C 3∼2세기 이래의 청동기 유물이 다수 출토된 곳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경상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일찍 발달된 정치집단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화달리 산 44-1
  • 네이버 전사벌왕릉 검색 링크
상주 금흔리 이부곡토성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98-04-1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226249㎡
  • 조성시대 청동기~삼한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사벌국(沙伐國)은 신라 첨해왕(재위 247~261)때 석우로(昔于老)에게 멸망했다는 기록(삼국사기)이 있다. 이 사실은, 상주 지역에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문화적 전통을 배경으로 삼한 시대에 사벌국이란 소국이 성립되었으리란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부곡 토성은, 사벌들을 U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능선 가운데 서편의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구릉의 최고 높은 곳(해발 170m)에 위치한 토성이다.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그 사면과 계곡을 감싸안은 형국으로 북동쪽으로 트인 계곡을 문지(門祉)로 하는 포곡식(包谷式)이다. 축조 방식은, 서쪽과 남쪽 및 동쪽의 일부는 자연 경사면을 이용하여 외면만을 깎은 형태이며 북쪽은 협축상의 토루로 되어있다. 토루는 상부 폭이 10~13m정도이며 성문쪽에 이르러서는 90도로 꺾어져 옹성의 형태를 연상케 한다. 성문지의 남적은 자연 단애이고, 성벽의 서쪽과 남쪽은 능선이 꺾이는 곳마다 치(稚)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돌출부가 확인된다. 성 내외에서는 청동기말기.초기 철기 시대의 유물과 원삼국 시재의 유물이 채집된다. 북쪽 성벽에서 무문토기편과 두형토기, 삼국시대 토기편이 대량 발견되고, 성의 북쪽에 길게 뻗은 속칭 ‘바람받이 고개’에는 토광묘 유적이 발견되는데 초기 철기 시대의 무문토기와 주조철부, 와질제의 주머니호 등이 채집되어 이부곡 토성의 조성 연대가 원삼국 시대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이부곡 토성의 존재 의의는 곧 기록상의 사벌국 존재를 재확인 시켜주는 실증이 될 뿐만 아니라, 사벌국의 초기 문화가 이 성을 중심으로 한 일대에서 비롯되었으리란 근거 자료 구실을 한다고 하겠다.
  • 전화번호 054-534-4336
  • 관리기관명 괴산피씨종중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금흔리 산1
  • 네이버 상주 금흔리 이부곡토성 검색 링크
상주 도림사 소장 청동유물 일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43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2-05-1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31점
  • 조성시대 고려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도림사 소장 청동유물 일괄 31점은 불교의식에 사용되었던 도구들로서 청동 바라 2점, 청동 향완 2점, 청동 광명대 1점, 경쇠 2점, 청동접시 23점, 청동국자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청동향완은 청주 사뇌사에서 출토된 태화5년銘 향안과 유사하고 , 청동접시 또한 사뇌사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器種인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13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청동바라 2점에 ‘癸未八月日尙州地大淵寺鉢螺壹入重一斤□兩大匠淸州孝三納道人□□□□’의 명문이, 청동향완에는 內□□叱加□加吾音助乃什□□□□眞明珠加□乙丑三月八日入重二斤二兩□…’ 의 명문이 남아 있어 이를 통해 소장 사찰명과 제작한 장인(匠人)을 알 수 등 고려시대 금속공예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437호로 지정되었다.
  • 전화번호 054-533-1784
  • 관리기관명 도림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서곡1길 96-43(도림사)
  • 네이버 상주 도림사 소장 청동유물 일괄 검색 링크
상주 상락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3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08-04-2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불상은 오른손과 왼손은 각각 촉지인과 설법인을 맺고 오른발을 위로 하여 結跏趺坐한 목조석가여래좌상이다. 肉를 포함한 머리 부분이 像 높이의 1/3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크며, 몸통은 머리에 비하여 좁고 작은 편이다. 服制는 法衣를 오른쪽 어깨에도 살짝 걸치는 右肩偏袒으로 입었고 하체에는 裙을 입었다. 복부 위에 보이는 裙衣 상단은 연꽃잎을 여럿 겹친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왼쪽 무릎 위에는 옷의 끝자락이 몸의 바깥으로 삐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독특한 표현으로 주목할 만하다. 양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이 불상의 조성연대는 조선 후기로 추정된다.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完形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담한 비례와 치밀한 조각수법 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전화번호 054-535-2881
  • 관리기관명 상락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4길 19(상락사)
  • 네이버 상주 상락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 검색 링크
상주 복룡동 석조여래좌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1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63-01-21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고려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 시내 왕산 남쪽 기슭에 미륵전이 있어 석불 일구가 보존되어 있다. 이 석불은 원래 상주시 복용동에 있었던 것을 1975년 현재 자리로 옮긴 것이다. 복룡동에 있는 당간지주와 복룡동 일대에서 많이 발굴되고 있는 옛 기와쪽 등으로 미루어 보아 중고대에 이 곳에는 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석불은 견고한 화강석 하나로 조성된 여래상으로 결가부좌하였는바 양쪽 무릎과 오른손, 그리고 양어깨와 머리 부분에 파손이 심하여 광배와 대좌는 없어졌다. 파손된 머리에는 나발(꼬불 꼬불한 부처의 두발)이 뚜렷하게 남아있고,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양 눈썹 사이에는 백호가 없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두 눈은 눈 고리가 길게 옆으로 흘렀으며, 콧마루는 파손이 심하나 형태는 뚜렷하여 입술과 같이 작게 조각된 것이 주의를 끈다. 양쪽 볼은 비대한 듯 하나 약간의 웃음을 담고 입술에도 미소가 어리어서 둔중함 보다는 오히려 풍려한 인상을 주고 있다. 얼굴 모양은 원만하며 목에는 삼도(3개의 줄)가 돌려졌는데 그 선은 얼굴과 같이 매우 부드럽게 조각되었다. 어깨를 두른 법의는 두 팔에 걸쳐 밑으로 흘렀고 가슴 밑 배꼽 부분에서는 원호를 그리면서 두 무릎까지 흘렸는데 옷의 아름다움이 비단 같고 오른쪽 무릎 위에는 왼쪽 발바닥이 조각되어 있다. 수인(그 깨달은 내용을 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고 있는 모양)은 오른 손은 크게 파괴되고 왼손은 다섯 손가락이 모두 파손되었으나 양손의 위치로 보아 지권인(왼손 둘째 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쥐는 형상)을 맺은 것으로 추측되므로 이 불상은 비로자나불이라 생각되며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 초기인 10세기 경으로 추측된다.
  • 전화번호 054-534-0128
  • 관리기관명 상주법우회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동 163-48
  • 네이버 상주 복룡동 석조여래좌상 검색 링크
상주향교 대성전 동무 서무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09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2020-12-2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3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향교」는 조선시대 향교의 기능에 따른 건물과 배치구성, 지방행정체계에 대한 설위형식이 지역별로 시기적 변화양상이 있었음을 밝힐 중요한 건축사적 특성을 가진 건물임. 동무서무는 건축 연혁이 명확하고 조선중기에 중창된 뒤 위치의 변경이 없으며, 대체적으로 당시의 구조양식 등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음. 특히 정형화되고 엄격한 배치구성이 돋보이며, 문묘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경사 지형을 고려한 탁월한 입면구성을 갖추고 있음.
  • 전화번호 054-533-0451
  • 관리기관명 상주향교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동 203-1
  • 네이버 상주향교 대성전 동무 서무 검색 링크
충신의사단비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3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99-12-30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1565㎡)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비는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 때 상주 지역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하다가 임란 북천 전투에서 순국한 윤섬(尹暹), 이경류(李慶流), 박호, 3충신(순변사 이일 휘하 중앙군)과 상주 출신의 의병장인 2의사, 김준신(金俊臣), 김일(金鎰) 도합 5인의 충절을 포상하기 위해 정조가 내린 단비인데, 석비 및 내용면에 있어서는 특별한 것이 없지만 정조가 내린 교서 내용이 비문에 적혀 있다. 원래 시내에 있던 것을 1986년 10월 시내의 도시 개발과 건물의 노후화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하였다.
  • 전화번호 054-533-9476
  • 관리기관명 흥충보존위원회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10-14
  • 네이버 충신의사단비 검색 링크
상주 흥암서원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6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85-10-15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4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동춘당 송준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송준길(1606∼1672)은 조선 후기 문신이며 뛰어난 학문과 바른 행실로 추천을 받아 관직에 올랐다. 김장생의 가르침을 받은 성리학자로서 특히 예학에 밝았다.흥암서원은 숙종 28년(1702)에 세웠으며 숙종 42년(1716)에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경내 건물로는 흥암사, 진수당, 집의재, 의인재, 어필비각 등이 있다.위패가 있는 흥암사는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강당 구실을 하던 진수당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집의재와 의인재는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어필비각 안에는 숙종이 지어준 ‘흥암서원’이라 새긴 비가 있다.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 전화번호 054-534-5131
  • 관리기관명 흥암서원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34
  • 네이버 상주 흥암서원 검색 링크
상주향청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33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97-09-29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99.17㎡)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지방 양반들이 행정업무를 도우면서 향촌의 사회·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였던 건물이다. 서울과 지방의 연결고리 구실을 하기도 했다. 1500년대 말에 현감 벼슬을 지내던 한순이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없어졌고, 광해군 2년(1610)에 손자인 한진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 뒤 여러 차례 고쳐 지었고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이용하였다. 1995년까지 상주시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인데 건물 자체는 많이 훼손되었다.지방 양반들이 이곳에서 향촌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과 향청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왕산로 282
  • 네이버 상주향청 검색 링크
상주 농업협동조합 구 창고(상주농협 구 창고)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84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등록유산
  • 지정일자 2006-12-0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1층.496㎡)
  • 조성시대 1931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에 건축된 상주지역의 양곡반출을 위한 임시보관창고로서 목골 철망모르타르조의 맞배지붕 단층 건물이다. 동서방향으로 길게 배치된 맞배지붕 단층집으로 목골 철망모르타르조 벽체, 벽면과 지붕사이의 몰딩 장식, 내부의 목재 왕대공 트러스트 구조 등의 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이 창고는 당시의 건축규모와 기술력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우리나라 근대기 농업창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사적·건축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 전화번호 054-531-2202
  • 관리기관명 상주농업협동조합장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왕산로 64
  • 네이버 상주 농업협동조합 구 창고(상주농협 구 창고) 검색 링크
천운정사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7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민속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7-12-29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천운정사의 건물의 평면은 ㄱ자형이고 홑처마지붕이다. 정면은 3칸이고, 측면은 1칸이다. 1717년(숙종 43년)에 창건하였다. 전체 평면은 연못과 화단, 정사로 구분된다. 영조 때 성리학자인 식산 이만부(1664년∼1732년)선생의 정자였다. 이 정사는,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선생이 1697년 34세로 서울에서 이주해 와서 학문과 교육 문학과 서도에 일가를 이룬 공간으로 식산정사(息山精舍) 중 유일하게 보존 된 천운정(天雲亭)이다. 식산을 남쪽으로 배경삼은 이 정사는 문인들과 친지들에 의해 1700년에 완성하였는데 대지면적은 1,017㎡이다. 북향한 정사 구조는 산자락 경사를 이용해 건물 화단 연못의 3단계로 구성되고 경계를 자연석 돌담으로 쌓아 전 통가록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건물은 ㄱ자평면으로 방 2칸, 마루 2칸 인데 마루 한 칸은 누마루 형태를 취하여 정자(亭子)의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이에서 연유하며 천운(天雲)이란 뜻은 주자(朱子)의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회)란 시구(詩句)에 서 취한 것이다. 정자의 주인공인 식산 선생은 평생을 학문으로 일관한 선비로서 한국실학사에 실심실학자(實心實學者)로 유학사에서는 자가설(自家設)을 수립한 성리학자(性理學者)로, 서도에서는 팔분체의 대가로 문학사에서는 문장가로 일가를 이루었고, 그 외 음악, 회화, 예악에도 탁월한 업적을 남긴 분이다. 바로 이 천운정사(天雲精舍)는, 상산이 낳은 대유의 향취가 시공을 초월해 향존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답2길 46
  • 네이버 천운정사 검색 링크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41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09-12-2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조선시대(1700)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전식(全湜, 1563~1642)의 본관은 옥천(沃川)이고 호는 사서(沙西), 자는 정원(淨遠), 시호(諡號)는 충간공(忠簡公)이며 충북 옥천의 목담서원, 상주 옥동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홍문관 교리, 대사성, 대사헌 이조참판, 응교 부제학 의정부 좌찬성 좌의정 지중추부사 겸 경연춘추관사를 역임하였다. 상주의 상산삼로(商山三老)로 칭송되는 당대 영남학파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문장은 으뜸으로 꼽히며, 청렴결백한 성품을 지닌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도비는 1700년(숙종26)에 세운 것으로, 이수(首)의 용문(龍紋)이 사실적이며, 귀부(龜趺)도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인근 마을과 문중에서는 귀부 앞에서 뒤로 돌아서서, 이수 위에 돌이나 동전을 던져, 이수 위에 올라가게 되면 출사(出仕)하거나 원하는 자식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외서면 관동리 불천위사당(不遷位祠堂)에서 불천위제사가 모셔지고 있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답동 산24-1
  • 네이버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검색 링크
상주 전식종가 소장 고문서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6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21-12-20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69점
  • 조성시대 17세기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은 상주 지역에서 수백 년에 걸쳐 세거한 사서(沙西) 전식(全湜, 1563∼1642) 종택의 소장 고문서이다. 전식은 서애 류성룡과 여헌 장현광의 문인으로, 160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1640년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고 死後 좌의정에 추증되어 상주 옥동서원에 배향되었다.고문서 69점은 1603년부터 1697년에 발급된 유지, 교지, 녹패 등으로 상주 지역의 사족 가운데 전식 가문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판단된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관동1길 58
  • 네이버 상주 전식종가 소장 고문서 검색 링크
상주 전식초상 일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6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21-12-20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4점
  • 조성시대 조선후기 추정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은 상주 지역에서 수백 년에 걸쳐 세거한 사서(沙西) 전식(全湜, 1563∼1642)의 초상 일괄 유물이다. 전식은 서애 류성룡과 여헌 장현광의 문인으로, 160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1640년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고 死後 좌의정에 추증되어 상주 옥동서원에 배향되었다.전식초상은 조선 중기 17세기 영정 양식으로 제작된 전신교의좌상으로, 신청한 반신상의 초본을 기초로 이모된 초상화다. 초상화를 보관하는 나무함 2점도 조선후기 전통 짜임 방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자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됨.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관동1길 58
  • 네이버 상주 전식초상 일괄 검색 링크
상주 전식조복 및 공예품 일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7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21-12-20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조복 3점, 공예품 일괄(10점)
  • 조성시대 17세기 중기 추정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은 상주 지역에서 수백 년에 걸쳐 세거한 사서(沙西) 전식(全湜, 1563∼1642)의 조복 및 공예품 일괄 유물이다. 전식은 서애 류성룡과 여헌 장현광의 문인으로, 160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1640년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고 死後 좌의정에 추증되어 상주 옥동서원에 배향되었다.전식조복은 상태가 양호하지는 않으나 조복 홍의와 훈상, 대대 외에 패옥, 아홀 등 12종의 구성물 중 5종이 함께 소장되어 있는 국내 최고(最古)의 전세 유물로 출토복식에서는 볼 수 없는 당시의 실제 색상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판단됨.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관동1길 58
  • 네이버 상주 전식조복 및 공예품 일괄 검색 링크
상주 대산루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20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2022-12-2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 대산루」는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낙향한 후 우산리에 들어와 은거하고 학문을 닦는 장소로 1602년에 처음 짓고 1778년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다듬어진 누정 겸 서실(書室)이다. 종갓집의 학문과 교류의 거점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시대 지방 선비의 학문적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17세기 영남학파의 전통을 잇는 학자로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예학의 대가로 불렸으며, 류성룡(柳成龍)의 3자인 류진(柳袗)을 비롯하여 모두 107명의 제자를 배출함상주 대산루는 5량가 중층 누각의 팔작지붕 건물로 배산임수 배치를 두고 있다. 전체적인 평면구성은 ‘丁’자형으로 남쪽의 ㅣ자형 건물은 단층의 정사(亭舍, 정자 형태의 집)로 강학공간, 북쪽의 ㅡ자형 건물은 누각으로 휴양, 접객, 독서를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삼았다. 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대청 2칸, 온돌방 2칸으로 구성하였으며, 누각은 정면 2칸, 측면 5칸 규모로 1칸 규모의 온돌방을 중심으로 앞쪽은 누마루, 뒤쪽은 서고로 구성하였다.정사와 누각 두 개의 건물을 ‘丁’자형으로 연결하는 방식과 두 공간을 이어주는 자연석 계단과 담장, 누각 2층에 구성된 온돌, 기둥 밖으로 돌출시켜 도리를 거는 출목도리 형식의 가구구성에 나타난 독특한 건축기법 등은 대산루의 건축적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또한 인근에 위치한 우복 종가 등 관련 건물과 함께 주변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향촌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문집과 문서 등이 생산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아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 전화번호 054-536-7018
  • 관리기관명 진주정씨종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46
  • 네이버 상주 대산루 검색 링크
우복종택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9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국가민속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8-11-0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8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진주 정씨 우복 정경세(1563∼1633) 선생이 38세 때 이 고장에 들어와 여생을 지낸 곳으로, 우복동천이라고도 한다. 선생이 선조와 인조 때 성실하게 활동한 것을 치하하여 영조가 남북 10리와 동서 5리의 우복동천 구역을 하사하여 1602년 대산루를 짓고 1603년 별서 기능을 가진 계정을 지었으며 그의 고손자인 주원은 영조가 하사한 사패지에 종택을 지었다. 5대손인 정주원 때부터 대대로 살게 되었다. 이 종택은 우복산과 이안천을 낀 전형적인 배산임수에 자리하고 있으며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이 튼 口자형으로 배치된, 종택으로써 갖추어야 할 건축적 요소들을 잘 간직하고 있는 영남지방의 반가이다. 튼 ㅁ자로 배치된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가묘가 남아 있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부엌·안방·윗방·대청·상방으로 구성되었고, 사랑채는 一자형 구조로 사랑방·대청·건넌방이 배열되어 있다. 집 몸채의 바닥이 마당보다 상당히 높게 자리잡고 있어 특이하다. 대산루는 마을 하천을 건너면 널찍한 대지 위에 잡석으로 축대를 낮게 쌓고 자연석 주초에 원기둥의 팔작 기와집으로 단층에 연결하여 2층 누각을 세운 T자형 건물이다. 단층집은 정면 4칸, 측면 2칸인데 남편 2칸은 대청이며 내동주가 없고, 북편 2칸은 방이며 퇴마루로 통해서 돌계단을 누각으로 오르게 했다. 누각은 천장 높이의 2층에 온돌 장치를 한 방 1칸과 마루방(서실) 2칸의 대청을 놓았다. 대청 마루 한족 벽에 우곡잡영 이십절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내용은 서실, 오봉당, 오노대, 산영담 등 부근 20절경을 예찬한 시구이다. 이층 누각으로 올라가 누마루에 서서 동남 쪽 앞을 내다보면 바로 앞에는 낙동강의 상류인 우산천이 흐르고 멀리는 겹겹 산봉이 사방으로 아늑히 둘러 싸여 별세임은 깨닫게 된다. 누상에는 정동교가 쓴 <대산루>란 초서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곧 이 누각을 비롯한 부속건물 일체를 통칭하고 있다. 이 누각은 조선시대에 보기 드문 건축 양식으로 하층은 부엌 장치를 하고 상층은 온돌방으로 만든 점이다. 이러한 양식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누각 동편에 계정(溪亭)이 있는데 1603년에 세운 창간정의 별명이다. 이곳에 200여 m 떨어진 서편 산 대지에 도존당(道存堂)이 있다. 이 당은 처음 향인들이 서당으로 세운 것을 점차 증축하여 뒤에 우산서원으로 승격하고 우복을 봉향하다가 대원군 때 훼철되어 현재 건물만 남았다. 이 유서 깊은 건물들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심히 퇴락 되었는데 1978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상주시가 유적을 보수 정화하였다. 한마디로, 대산루와 계정은 우복선생이 개창한 선비의 독서처요 강학당으로 조선후기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선생에 이르기까지 영남의 강학소로 널리 알려진 건축물이다.
  • 전화번호 054-536-7018
  • 관리기관명 진주정씨종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90
  • 네이버 우복종택 검색 링크
병암고택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3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5-08-05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본 가옥은 우복선생의 6대손인 입제(立劑) 정종로(鄭宗魯)(1738년∼1816년) 선생의 아우인 재노(宰魯 1775년생) 공이 15세 때 주거용으로 1770년(영조 46년)년에 건축하였으나 현재는 사랑채만 남았으며 안채는 80년 전에 개축하고 별채(현 병천정 현판이 있는 집)는 70년 전에 개축한 것이라 한다. 이 마을에는 고 가옥이 20여 동이나 있으나 병암만 민속자료로 지정 받았다. 고택은 자연석 기단과 주초에 각주를 사용하고 벽체는 흙으로 사벽 처리하였다. 대청은 우물마루를 놓고 상부가구(上部架構)는 오량가로 동자주(童子柱)를 사용하였다. 병암의 평면구성은 부엌이 고방으로 바뀌었을 뿐 남쪽지방의 주택의 안채와 꼭 같은 방 배열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예는 특이한 것이라 한다. 병천정이란 현판이 있는데 이는 정동두(鄭東斗)가 1840년경에 우산고개 계곡에 전면 5간, 측면 2간의 정자를 짓고 앞에는 연못을 만들어 멋진 곳이었으나 1982년에 허물고 현판만 이 곳에 보관하였다. 또한, 지붕 안에 양각한 현판의 병암은 소유자인 정재하(鄭在夏)의 증조부인 진사 정철우(鄭喆愚)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라 한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918-3
  • 네이버 병암고택 검색 링크
상주 두곡리 뽕나무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5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천연기념물
  • 지정일자 2020-02-0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주(2585㎡)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시 은척면의 뽕나무가 상주 두곡리 뽕나무로 명칭이 변경되어 도기념물 제1호에서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승격했다. 아름다운 수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많은 양의 오디가 열릴 정도로 수세가 양호하다. 특히 양잠이 번성했던 상주의 지표로서, 우리의 생활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문화재청으로부터 역사적, 민속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수령이 300년으로 추정되는 상주 두곡리 뽕나무는 보기드문 뽕나무 노거수로, 상주가 양잠의 고장이었음을 실증해주는 표상이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324
  • 네이버 상주 두곡리 뽕나무 검색 링크
두곡리 은행나무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75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87-05-02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주(727㎡)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상주 두곡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45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5m, 둘레 8.3m의 크기로 가지는 사방으로 퍼져 있으며, 전체적인 성장상태도 양호하고 우람하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의 생태를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하는데, 가을날 은행잎이 하루 이틀 사이에 다 떨어지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몇 날을 두고 잎이 떨어지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한국전쟁 때에는 마을과 주민들의 피해가 없었다고 전해져 이 은행나무가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덕목(德木)이라고 믿고 있다. 상주 두곡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640
  • 네이버 두곡리 은행나무 검색 링크
동학교당 유물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1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민속문화유산
  • 지정일자 1995-03-3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77종1084점
  • 조성시대 일제강점기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동학교당에 보존되어 있는 동학교에 관한 유물로서는, 총 177종 1,084점에 이른다. 동학은 1860년(조선 철종 11년)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로서, 처음엔 서민층에 널리 유포된 단순한 신앙형태이었으나, 나중에는 사회개혁운동의 주체로 변모되어 민족운동의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되었다. 2대교주 최시형을 거쳐 3대 손병희에 이르러서는 내부의 대립이 심화되어 30여 개의 교파로 나뉘고 각기 독립된 교당을 설립하였다. 1922년 김낙세 부자의 노력으로 설립된 상주동학교당은 대대적인 간행사업을 벌이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편 끝에 상주, 문경, 안동 등 경북을 중심으로, 충청도 강원도에까지 교세가 이르게 되었다. 이 교당에 소장된 유물은 동학 경전을 비롯한 전적류 131점, 동학경서나 가사 등을 나무에 새긴 판목 792점, 의복류 31점, 교기와 인장 등이 130점 남아 있다. 동학교 내에서 상주동학교당의 지위와 성격을 밝힐 수 있고, 동학 연구에도 기여하는 유일한 자료이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우기1길 64
  • 네이버 동학교당 유물 검색 링크
상주 동학교당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민속문화유산
  • 지정일자 1999-12-30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곽
  • 조성시대 1924년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동학교당 소유자인 김정선의 조부인 김주희(金周熙 1860∼1940)가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18년에 건립하였다. 동학교 남접주인 김주희 선생이 1915년 이곳에 본거를 정하고 본당을 짓기 시작하여 3년에 걸쳐 부속사를 포함 준공을 하였다. 그 후 포교와 교세 부흥을 꾀하여 동학 경전을 발간하였으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조선의 독립을 확언하다가 그 아들이 투옥되기도 하였다. 은척(銀尺)은 신라 시대부터, 경주에는 금척을, 상주 은척(銀尺)에는 은척을 묻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교당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의 평지 마을에 서 있다. 가옥 구조는, 원채(북재 52㎡, 정면 3간, 측면 2간), 행랑채(남재 59㎡, 정면6간, 측면 2간), 사랑채(동재 50㎡, 정면 5간, 측면 2간), 안사랑채 (서재 26㎡, 정면 5간, 측면 2간), 곳간채(고방 17㎡, 정면 3간, 측면 1간), 상하마석(上下馬石)(자연석 2석), 깃대 꽂이 (단형 다듬이 돌 2석) 등으로 구성되었다. 중심 건물인 원채는 성채실, 동재는 접주실, 서재는 남녀 교우가 각기 반분씩, 남재는 남교우가 거처하였다. 원채 이외의 3동의 건물은 각 2분하여 좌우 방향이 180도 또는 90도로 달리 정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런 구조를 태극체(太極體) 또는 음양체(陰陽體)라고 하며, 전 건물이 초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당초 국가지정 전통 건조물 제10호(1987. 4. 1)였으나 전통 건조물법 폐지로 인하여 지방 문화재 민속 자료로 다시 지정 되었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우기1길 64
  • 네이버 상주 동학교당 검색 링크
상주 추원재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64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10-03-1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곽(2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추원재는 진주강씨 찬성공파 종중 재사로 1704년에 강영숙(~1504)과 그 장자 호·차자 택·삼자 온·사자 준의 묘역 아래에 후손 강진·강로·강석경이 건립하였다. 현재 묘제를 지내고 묘소의 수호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회합을 도모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창건 이후 1830년 퇴락해진 건물을 문중 사람들이 뜻을 모아 재물을 보태어 중건하고 그 상량문을 대청 상부 종도리에 밀봉해 놓았다.1830년 중건한 강당형 재실인 추원재는 넉넉한 부재를 사용하여 튼실하게 잘 지은 건물로 중건 당시 모습이 거의 대부분 잘 남아 있다. 건물의 연륜을 짐작케하는 청방간 창호 형식, 내구와 기밀성을 높이기 위하여 공들여 다듬은 창받이 턱소란, 예스럽고 소박한 멋을 지닌 까치발 등이 작지만 돋보이는 건물이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나한양범길 294
  • 네이버 상주 추원재 검색 링크
상주 쾌재정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8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11-01-0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쾌재정은 상주군 이안면 가장리에 있는 정자이다. 조선초기의 문신이며 문장가, 중종반정공신으로 인천군(仁川君)에 책봉되었던 나재(懶齋) 채수(蔡壽,1449~1515)가 중종반정 이후 이조참판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지은 정자이다.그가 쾌재정에서 지은 최초의 한글소설 〈설공찬전〉은 당시 훈구대신과 신진사류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정치적 상황에서 저승을 다녀온 주인공 설공찬이 당시의 정치적 인물에 대한 염라대왕의 평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홍길동전〉보다 100년 앞선 최초의 한글소설 〈설공찬전〉의 산실인 쾌재정은 채수의 삶과 학문이 녹아있는 정자이다.18세기 후반에 지어진 산정형(山頂形) 정자로서 쾌재정이 보여주는 익공형식과 화반장식, 처마 앙곡 등의 수법은 건축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최초의 한글소설인〈설공찬전〉이 이곳에서 지어졌다는 역사성을 인정하여 문화재자료로 지정한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인천채씨 양정공파 종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함창로 41-61
  • 네이버 상주 쾌재정 검색 링크
상주옹기
  • 향토문화유적구분 무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5-다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무형유산
  • 지정일자 2007-01-0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개소
  • 조성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시대 상주지방 옹기제작과 관련해서는『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상주목조에 관내 오사요리라는 곳에 황옹을 만드는 도기소가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정학봉의 옹기업은 그의 고조부 때부터 시작된 가업으로 현재 4대째를 맞고 있다. 고조부부터 조부 때까지는 상주, 보은 일원의 옹기공장에서 일하다가 옹기업으로 명성이 높았던 부친 대에 지금의 위치에 정착한 것이다.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활용해 만들어진 각종 옹기는 지상 위에 노출된 6칸짜리 전통 장작가마인 연실요(連室窯)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제작품은 단지, 각종 항아리, 푼주, 자배기, 각종 반상기, 뚝배기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쓸 수 있는 생활용기명이 중심을 이룬다. 옹기의 제작방식, 과정, 생산품의 종류나 조형성 등은 전통적인 옹기제작의 기본을 충실히 전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주지역 전통옹기의 맥을 현재에까지 잇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 전화번호 054-541-9400
  • 관리기관명 상주옹기장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흑암리 29
  • 네이버 상주옹기 검색 링크
수암종택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30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국가민속문화유산
  • 지정일자 2022-08-22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3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종택은, 서애선생의 제3자인 수암(修巖) 류진(柳袗)선생이 37세에 가사리(佳士里)에 터를 잡은 데서 비롯되며 풍산 류씨우천파종택으로 강고(江皐) 류심춘(柳尋春), 낙파(洛波) 류후조(柳厚祚) 계당(溪堂) 류주목(柳疇睦)등 석학과 명공이 이 집에서 태어났다. 이 집은 속리산 팔공산 일월산의 지기가 모이고 낙동강과 위강이 합류하는 삼산이수(三山二水)의 명당지로 알려진 곳에 서 있다. 정침(몸채)은 정면 6칸, 측면 6칸, 전면 박공, 후면 합각지붕이며 녹사청(祿事聽)은 7칸, ㄴ자형 곡자 집으로 몸채의 남방에 배치되었다. 이 녹사청은 대신의 비서격인 녹사가 기거하며 봉조하의 녹봉을 지고 오는 지방관리들을 영접하고 유숙케 하던 건물로 휘귀한 존재다. ㄴ자형의 정면 4칸, 측면 4칸의 우진각 지붕이다. 사당은, 전면에 원주를 세우고 퇴를 물린 건물로 3양가(양架)에 판대공(板대工)을 얹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반, 박공기와 지붕이며, 파조인 수암선생(修巖先生)의 신주를 모시었다. 수암 류진(1582년∼1636년)선생은 서애선생의 제3자요 문하생으로 가성을 찬양한 선비요강고 류심춘선생은 구당 조목수 가은 조학수 입재 정종로 등 제 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학행으로 벼슬에 나간 선비다. 낙파 류후조(1798년∼1876년)선생은 현달하여 좌의정에 오른 명신이며 후덕중망(厚德重望)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선비었다. 계당 류주목(1813년∼1872년)선생은 영남학파를 최후까지 이끈 성리학자요 교육자로서 류도수 외 320명의 제자를 배출하였다. 요약하면 이 종택은 명당에 자리하여 많은 명현을 배출한 고가라 하겠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중동단밀로 156-33
  • 네이버 수암종택 검색 링크
갑장사 삼층석탑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5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5-08-05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고려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시 지천리 연악산, 갑장산 상봉에 위치한 갑장사의 법당 앞 마당 가운데 고려식 일반형 석탑 1기가 있다. 이 탑은 전체가 화강석으로 조성되었으며 단층 기단 위에 탑신부를 받고 상륜부는 완전하지 않다. 4매석으로 결구한 방형의 지대석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고 각면에는 양우석과 중앙 일장주가 정연히 각출되었다. 갑석은 2매석으로 결구하였고 하면에는 내곡을 이룬 둔중한 부연이 마련되고 상면은 사우에 함각도 없이 평평하여 중앙에 높직한 4분원의 중석 받침(몰딩)과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각출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각신 개석이 일석식으로 각층 옥신에는 양 우주가 정연하다. 각층의 옥개석은 추녀부의 낙수홈이 초층개석만에 있고 그 외의 양식은 2층이 모두 동일한 바 받침이 3단이고 정면에 일단식의 옥신받침이 각출되어 있다. 3층 옥개석은 일단의 각형 받침으로 노반이상의 상륜부를 받고 있으며 그 정면 중앙에는 찰주공이 있다. 상륜부는 현재 로반과 그 위의 복발이 동일석으로 조성되어 석탑 정상에 놓여있고 그 이상의 부재는 없다. 이 탑은 기단부와 탑신부 등이 고려식이어서 각부재의 치석이 세련되지 못하여 각우각의 선이 예리하지 않으나 각층 옥개석의 낙수면이 평박한 편이고 전각에 반전이 있어서 다소 경쾌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리고 처마가 거의 직선이고 낙수면의 사우합각이 완만한 곡선이어서 서로 잘 어울리어 고려식 석탑으로는 경박감이 없는 편이다.
  • 전화번호 054-533-3474
  • 관리기관명 갑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215-187
  • 네이버 갑장사 삼층석탑 검색 링크
용흥사 삼불회 괘불탱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374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2003-04-14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폭
  • 조성시대 조선시대(1684)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삼세불탱은 16세기 후반부터 그려져 주로 대웅전에 봉안하고 있으나, 야외법회를 위하여 괘불로도 조성하였는데, 지금까지는 이 용흥사 삼불회괘불을 비롯하여 오덕사괘불(1768년), 금탑사괘불(1778년), 불암사괘불(1895년)등 총 4점 뿐이다. 이 탱화는 현존하는 삼세불 괘불 중에서도 제작 시기가 앞서는 작품으로 1684년(숙종 10)에 완성되었다. 괘불을 그린 화가는 인규(印圭), 종식(宗植), 취감(就鑑) 등으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을 구도로 하고 8대보살과 10대제자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괘불탱으로 격조가 높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조선시대 불교미술 및 괘불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전화번호 054-533-7728
  • 관리기관명 용흥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223-35(용흥사)
  • 네이버 용흥사 삼불회 괘불탱 검색 링크
체화당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78-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6-12-1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3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월간 이전(1558∼1648)이 노년에 도를 가르치던 곳이다.체화란 형제우애를 뜻하는 말로 이전, 창석 두 분의 우애를 상징하는 말이다.체화당은 월간의 셋째 아들 신규 공이 세웠다.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2칸은 마루방이고 양측에 각각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건물 대청 뒷벽 위에는 1941년에 작성된 ‘체화당중건기(체華堂重建記)’와 ‘묘안이건상량문(廟岸移建上樑文)’이 걸려 있다.조선 중기의 건축물로 옛 모습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가천2길 52
  • 네이버 체화당 검색 링크
창석사당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78-2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6-12-1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체화당 안에 있는 건물로 창석 이준(1560∼1635) 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이준 선생은 조선 중기 때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에는 그의 형 월간 이전과 함께 의병을 모아 왜적에 대항했다. 채화는 형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 형제의 우애를 상징하였다고 한다.창석사당은 원래 효종 7년(1656) 다른 곳에 지었는데 영조 47년(1771) 월간 선생이 만년에 학문을 수행했던 체화당이 있는 이곳으로 이전하였다.월간 선생을 모신 사당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양측 끝에 바람을 막아주는 풍판을 설치하였다.
  • 전화번호 054-533-5915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가천2길 52
  • 네이버 창석사당 검색 링크
상주 천주교 신앙고백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62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09-12-2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비는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높이 127㎝, 너비 40㎝, 두께 22㎝크기의 비석이다. 김삼록(金三祿, 1843~1935)은 천주교에 대한 정부의 공격이 강하던 병인박해(1860~70년대)때, 박해를 피해 유랑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 비를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비의 모양새나 성격이 매우 독특할 뿐만 아니라 천주교가 상주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신앙심을 강하게 만들어 가던 한 인물의 행위를 잘 보여주는 희귀한 자료이다. 당시 청리 삼괴, 공성 등에 여러 천주교 신자들이 사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 전화번호 054-536-3789
  • 관리기관명 천주교안동교구 유지재단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삼괴리 361
  • 네이버 상주 천주교 신앙고백비 검색 링크
존애원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8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93-02-25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714㎡)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존애원(存愛院)은 사설의국으로서 임진왜란 뒤의 질병퇴치를 자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뜻을 같이 한 김각(金覺) 성람, 이전, 이준(李埈), 강응철(姜應哲), 김광두(金光斗), 정경세(鄭經世) 등의 상산 선비들이 존심애물(存心愛物)의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려는 뜻에서 1599년(선조 32년)탄생하였다. 이 해는 상주에 두 계가 있었던 것을 기해낙사계로 합사(合社)한 해로 13개 문중의 계원은 24명이었는데 합계한 자리는 존애당(存愛堂)이었다. 이로써 보면 존애원(存愛院)창설은 1599년이요 건물완성은 1602년이라 보아야 한다 존애원(存愛院)은 미증유의 전화를 입고 질병 앞에 무방비 상태였던 상주민의 고통을 스스로 덜어주기 위해 자생적으로 탄생한 사설의료국(私設醫療局)인 점에서 그 정신도 높이 살 일이지만 그 유래도 전국에서는 희귀하다 하겠다. 존애원은 의료활동만 한 의국이 아니라 낙사계의 회합 자리가 되어 각종의 행사도 치렀는데 특히 1607년 이후부터 갑오경장(1894년)에 이르기까지 경로잔치였던 백수회(白首會)를 개최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1607년의 존애원백수회(存愛院白首會)때는 송량(宋亮) 김각(金覺) 정이홍(鄭而弘) 윤전(尹� ) 등의 어른을 정경세, 이준, 김지복, 김지덕 등의 자질이 모시었다. 낙사계는 1797년(정조 21년)왕으로부터 대계란 칭송을 받고 1906년 한광(韓匡)이 아들의 관례(冠禮)할 때 존애원에서 <대계백수회>를 가진 바도 있다 한마다로 존애원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던 상주 선비들의 박애정신에서 탄생한 사설의료국이었음과 동시에 향토사랑을 실천한 낙사계원들의 모임터였다고 하겠다.
  • 전화번호 054-541-6995
  • 관리기관명 존애원보존회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율리1길 5
  • 네이버 존애원 검색 링크
상주민요
  • 향토문화유적구분 무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무형유산
  • 지정일자 1987-05-1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단체
  • 조성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는, 고래로 웅주요 고도로서 넓은 평야를 소유하고 있어 영남의 곡창지대로 일컬어져 왔으며 삼백(三白 : 쌀, 고치, 곶감)의 고장다운 천혜의 자연 조건을 고루 갖춘 지방이다. 공갈못이 고령가야시대 내지 삼한 시재에 축조되었다 하거니와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상주의 농경 문화는 일찍부터 발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벌모 심을 때의 모심기 소리 즉 공갈못 노래가 노동요로서 면면히 이어져왔고, 소수민에 의한 것이긴 하나 논매기 소리, 타작소리가 최근까지 보존된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수없다. 특히, 공갈못노래는 고려 이전 이미 불렀을 것으로 추정되며 연정가로서 채련요(採連謠)는 상주 문경 뿐 아니라 낙동강 연안 및 경상도 내륙 지방을 비롯해 멀리 전북의 내륙까지 전파, 번용되어 온 상태다. 이노래는 연정 외에도 사친(事親), 완월관어(完月觀魚), 채련(採連)등의 주제를 담고 4.4조의 구성진 가락으로 널리 전파되는 사이 생략형, 복합형, 후렴 첨가형 등의 다른 형태가 생기고 근자에는 이를 편곡하여 일반 대중의 향토에 고취에도 활용하고 있다. 다음은, 아시논매기 소리와 두불논매기 소리 및 자리개,도리깨 타작 소리는 초산동 특유의 노동요로서 동리의 주민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전승자의 계보는, 강덕기(초산동 거주, 작고), 이인규(초산동 거주, 작고) 이종완(20세부터 민요판에 참가 전수함), 김화경(초산동 거주, 지정당시 50세)등으로 이어져 왔다.
  • 전화번호 054-532-1360
  • 관리기관명 상주민요보존회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초산1길 56
  • 네이버 상주민요 검색 링크
상주 함창향교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46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3-04-0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곽(6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함창향교의 원래 있던 자리와 건설 연대는 미상이다. 함창읍지에 구향교동에 있던 객관(客館)에서 남국난 이후의 현지로 이건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70년 10월에 성균관대학교 교육연구원에서 전국 향교 실태 조사를 실시, 1398년(태조 7년)에 건립했고 1417년(태종 17년)에 지금 자리로 이건했다고 보고되었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으로, 정문인 외삼문을 지나면 안마당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고, 뒤쪽 높은 곳에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을 두었다. 도유사 1명, 장의 약간 명을 두어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례와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소설위 향교로서는 규모가 잘 갖추어진 향교로 그 형태가 잘 보존되고 있다.
  • 전화번호 054-541-6995
  • 관리기관명 함창향교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무운로 1557-4
  • 네이버 상주 함창향교 검색 링크
함창 오봉산 고분군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98-04-13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318632㎡
  • 조성시대 삼국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함창은 옛부터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의 수도였다고 전해지거니와 상주에 속해 있으면서도 나름대로의 문화적 배경을 지닌 고도이다. 신흥리 고분군(일명 오봉산 고분군)은, 함창이 사벌국 세력과는 달리 고동람군(古冬攬郡)으로 편제되면서 조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고분군, 속칭 달랑골, 안생 원골을 사이에 두고 조성되어 있다. 첫째 군은, 오봉산에서 신흥리 쪽으로 뻗어 내린 3개 지맥의 능선과 자락에 조영된 것으로 주로 소형 석곽과 중형급의 고분이 주류다. 둘째 군은 속칭 검은동 마을에서 돗질 마을까지 연결되는 산자락의 하단부와 정상부에 조영된 것들로서 중대형급 고분이 연속해 분포되었고 게중에는 직경 24m가 넘는 대형분도 포함되었다. 이 일대의 고분군 발굴로 토기류, 금동류, 마구류 등의 유물이 발굴되어 정밀 분석과 연구에 들어가 있는 상태며, 대체로 삼국 시대의 이른 초기에 사용되었던 유물로 보고 있다. 셋째 군은, 둘째 군의 동남쪽 신흥2리의 뒷편 야산에 분포한 고분군이다. 삼국 시대 이후 오봉산록(五鳳山麓)에는 성벽 둘레가 약 1.37km 정도의 남산성(南山城)이 해발 238m에 조성되어 있었다. 이 산성과 일대의 고분군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며, 고분의 규모 면에서 상주 지역 내에서는 병성산 고분군과 필적할 만한 고분군으로서, 함창 지역에는 사벌국 세력에 비견할 만한 지방 세력이 기원초 부터 형성되었을 것임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산33
  • 네이버 함창 오봉산 고분군 검색 링크
상주 관음사 아미타회상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431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1-09-22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점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불화는 1958년에 상주 용흥사로부터 기증받아 관음사 전신인 함창 포교당에 봉안하였다고 하는 세로 157㎝, 가로 229㎝ 크기의 아미타극락회상도이다. 새로 쓴 화기에 의하면, 원래 가경(嘉慶) 23년(1818) 상주 용흥사 도성암에 봉안되었던 탱화로서 도성암이 폐사되자 큰 절인 용흥사에 보관하고 있던 것을 증여받았다고 한다. 화면 중앙의 아미타불 좌상을 중심을 칠대보살과 십대제자, 사천왕, 제석, 범천 등 성중(聖衆)이 둘러선 구조이다. 아미타불 좌우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좌상 외에 석장과 보주를 든 지장보살 등 여러 권속이 대립하고 있다. 자주색에 가까운 적색과 녹색이 주조색을 이루고 신체에는 살구색을 사용하였고 유독 사천왕상에 풍부한 금채(金彩)의 화려한 장식이 돋보인다. 이 불화는 정밀한 형태묘사, 차분한 채색, 가늘지만 힘있는 필선, 사천왕의 화사한 문양과 장식, 풍부한 금채 등이 특징인 19세기 아미타극락회상도로서 가치가 크다.
  • 전화번호 054-541-3205
  • 관리기관명 관음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오동1길 37(관음사)
  • 네이버 상주 관음사 아미타회상도 검색 링크
상주 함창 사마소 유물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612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13-08-19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3책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유물은 상주의 사마록 봉안소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3種의 古書이다. 1690년경 編成된 것으로 추정되는 『咸寧司馬錄』과 1713년에 편성된『咸寧司馬錄』, 그리고 1692년에 편성된『咸寧司馬錄案』등이다. 이 책들은 경상도 咸寧(咸昌) 지역 출신으로 司馬試(生員·進士試)에 입격한 사람들의 名簿로서, 최초 편성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명단은 조선시대 말까지 追錄하였다. 司馬榜目이 온전하게 전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사마소가 설치된 과정과 더불어 생원·진사 475人(중복제외 267人)의 명단이 수록된 함창 지역의 인명록이라는 점에서 지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사마록봉안소 문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용곡로 214-5
  • 네이버 상주 함창 사마소 유물 검색 링크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1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63-01-21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통일신라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불상은 광배와 불신을 한 돌에 새긴 석불입상이다. 마멸이 심하여 세부 표현 수법을 알기 어렵다. 육계가 크고 얼굴은 길고 풍만하여 이목구비는 작은 듯 한데 마멸이 심해 확인하기가 어렵다. 왼손은 가슴에, 오른손은 배 앞에서 몸 쪽으로 붙이고 있는데 신체에 비해 양손이 크고 투박한 편이다. 통견으로 몸을 덮고 있는 옷 주름이 무겁고 단조로운 U형을 이루면서 연속되었는데 간결한 주름으로 잡혀있고 하체의 주름도 U에 가까운 계단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신체 굴곡도 약하지만 처진 어깨나 딱딱한 양손에서 정지된 위축감이 있다. 얼굴과 신체가 아담하고 비교적 볼륨감이 적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신라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는 주형거신광으로 마멸이 심하여 바깥쪽 가장자리에 돌려진 불꽃무늬만이 희미하게 확인될 뿐이다.
  • 전화번호 054-541-3551
  • 관리기관명 용화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9
  • 네이버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검색 링크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63-01-21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통일신라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불상은 전형적인 형식의 대좌위에 결가부좌한 약사여래좌상이다. 머리는 소발이고 육계는 파손되어 있다. 얼굴은 풍만한 편이나 마모로 인해 선명하지는 못하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통견의 법의는 양팔을 걸쳐 무릎을 덮었고 가슴앞으로 U자형의 의문선이 간결하게 흐르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놓고 ,왼손은 배 앞에서 보주를 받들고 있어 약사여래로 판단된다. 뒷면에는 약간의 의문선이 보이고 광배를 부착시켰던 구멍이 남아있다. 다리 앞에는 부채꼴형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유난히 넓고 크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불상의 3단 8각의 대좌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형태를 따르고 있는데, 중대에는 모서리 기둥 표현 외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고, 상대의 앙련에는 화문장식을 내부에 넣어 더욱 장식적으로 변하고 있다. 광배를 잃었지만 대좌와 불신이 양호한 편으로 신라 하대의 불상양식과 대좌 형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불상이라 하겠다
  • 전화번호 054-541-3551
  • 관리기관명 용화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9
  • 네이버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 검색 링크
전고령가야왕릉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77-12-29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8616㎡)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곳은 A.D 42년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여섯 가야(伽倻) 중 하나인 고령가야 태조의 무덤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고령가야는 낙동강 일대인 함창, 문경, 가은 지방을 영역으로 하여 세워진 나라로,『삼국유사』의 5가야조와『삼국사기』의 고령군조에 그 이름이 보이고 있다. 조선 선조 25년(1592) 당시 경상도 관찰사 김수와 함창 현감 이국필 등이 묘 앞에 묻혀 있던 묘비를 발견하여 가야왕릉임을 확인했다고도 전해오고 있다. 그 후 조선 숙종 38년(1712) 왕명으로 묘비와 석양(石羊) 등의 석물을 마련한 후 후손들에 의해 여러 차례 묘역이 정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함창김씨대종회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 7
  • 네이버 전고령가야왕릉 검색 링크
상주 관음사지사적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18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07-04-30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관음사는 도의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임란 후 17세기 초에 중수되면서 많은 속암(屬庵)이 딸린 대규모 사원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707년 이 후 어느 시기에 화재를 당해 다시 재건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음사지 사적비는 1707년(숙종 33) 자연암반에 12cm 정도의 깊이를 파 세운 것으로 대좌(臺座)와 비수(碑首)는 없다. 이 비는 폐사된 관음사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사면비(四面碑)에 찬자(撰者), 서자(書者), 전자(篆者)가 모두 승려라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있다. 지방관의 협조 없이 승려의 주도하에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원 경제와 관련된 입전(入田)내역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학술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동관2길 219-36
  • 네이버 상주 관음사지사적비 검색 링크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1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95-12-0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17㎡)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이 제단비는 의사(義士) 김준신(金俊臣)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설단한 것으로 1850년경에 제단비를 세우고 그 후 첨모재(瞻慕齋)를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1993년에 첨모재를 철거하고 원형대로 중건하였다. 낙화담(落花潭) 좌측의 나지막한 언덕 아래에 첨모재 뒤로 단을 높이고 축을 약간 꺾어 제단비각을 세웠다. 비각은 단칸 규모의 맛배집으로 건립연대는 첨모재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준신의사는 본관이 청도(淸道)이고, 호는 절곡(節谷)으로 이곳 판곡(板谷)에서 태어났는데 판곡은 고려조 이후로 청도 김씨세거지였다. 임진왜란이 반발하자 의사는 32세의 나이로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소집하여 솔령장(率領將)이 되었다.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칠곡 석전까지 전진하였다가 다시 상주 본진으로 돌아와 상주성 사수에 분전하여 많은 왜적을 도륙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끝내 임진년 4월 25일 장렬히 순국하였다. 당시 선조의 명을 받고 상주까지 온 중앙군의 순변사 김일(金鎰)과 상주목사 김해(金해)는 도망을 갔지만 상주 선조들은 북천전투에서 모두 장렬한 순국을 하였다. 당시 의사의 활약에 분노한 왜적들이 판곡을 찾아 김씨일문을 멸하려하자 죽어도 왜적의 손에는 죽을 수 없다하여 낙화담에 투신 자살한 김씨문 절부들의 넋도 오늘까지 낙화담을 밝히고 있다.
  • 전화번호 054-533-9476
  • 관리기관명 청도김씨상주파종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9
  • 네이버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검색 링크
상주 낙화담 소나무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4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2004-04-0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주(426㎡)
  • 조성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낙화담(落花潭)의 유래는, 화동면 판곡리의 안산(案山)인 백화산(白華山)이 화성(火星)을 띄우고 있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그 화기(火氣)를 중화시켜야 한다고 믿어 마을 사람들이 만든 못으로 황간현감이었던 김구정(金九鼎)선생이 5,284㎡정도의 못 가에 정자를 짓고 노인들의 놀이터로 꾸몄다 하나 지금은 약 426㎡정도이다.
  • 전화번호 054-533-9476
  • 관리기관명 청도김씨상주파종중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477
  • 네이버 상주 낙화담 소나무 검색 링크
상오리 칠층석탑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68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보물
  • 지정일자 1980-09-16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기
  • 조성시대 고려시대 초기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화북면 상오리에 귀중한 문화재인 고려시대 석탑이 마구 흐트러져 방치된 채 뜻 있는 사람의 가슴을 조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나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1977년 말 상주시 자체 사업으로 완전 복원하였으며 보물 683호로 지정되었다. 탑의 위치는 상오초등학교로부터 0.5km지점에 장각폭포가 있고 이 폭포로부터 1.5km 정도 서북편으로 들어가면 밭 가운데에 옛 사지가 있고, 이 곳에 무너진 석탑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이 7층 석탑은 일정 초기 주재 일본 헌병과 낭인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노력을 동원하여 탑의 북쪽 기단을 허물고 무너뜨렸다고 이곳 노인들은 말하고 있다. 현지에 있는 석탑의 양식은 기단이 상하 2층으로 사지의 동편에 위치하여 동탑서당의 배치에 따라 자리잡고 있었으며, 법당이 세워졌던 지표보다 약 3척 가량 높은 자리에 세워졌는데 탑 주변으로 한 변이 8.4m 되는 세벌장대(세 층으로 포개어 놓은 댓돌)의 기단을 마련하였다. 세벌장대로 기단을 모은 위에 한 변이 3.6m 되는 하층기단의 지대석과 면석을 쌓고 그 안통으로 두꺼운 지대석(기반석)을 1변 2.8m규모로 놓아 상층 기단을 받게 하였는데 면석은 6매 석이며 갑석은 2매로 되어 있다. 초층 탑신은 ㄱ자형석 두 개와 1매의 판석으로 구성되고 1층 옥개석부터는 1괴석으로 되어 있다. 노반까지는 남아 있으나 그 이상의 구조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탑에서 주목되는 구조는 하층 기단이 별도로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인데 좀처럼 보기 드문 양식이라 하겠다. 세벌장대 중심에도 심초석이 있고 주변에 고운 황토로 입사 기초한 기법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천황봉 아래 자리 잡은 이 탑을 중심으로 큰 절이 배치되어 있었고 이 곳 지명으로 미루어 절 이름은 장각사가 아닌가 생각되나 증거가 될 만한 유물의 발견이 없으므로 속단할 수는 없다. 현지의 절터에는 석탑과 주초석들이 배열된 법당자리와 주변에 석등파편 등이 발굴되고 있어 규모가 큰 당대 거찰이 있었던 곳으로 추측할 수 있고 탑재로 쓴 돌은 이곳 주변에서 생산되고 있는 붉은 색 화강석재로 조성되고 있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699
  • 네이버 상오리 칠층석탑 검색 링크
견훤산성
  •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5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기념물
  • 지정일자 1984-12-29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곽(35702㎡)
  • 조성시대 삼국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경북 상주시 장암리의 북쪽에 있는 장바위산 정상부를 에워 싼 테뫼식 산성으로, 견훤이 쌓았다해서 견훤산성이라 불린다. 이 산성 뿐만 아니라 상주지역의 옛 성들이 견훤과 관계지어지는 것은 『삼국사기』에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상주 출신이란 기록 때문이다.견훤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신라의 장군으로 있다가 이곳에서 군사를 양성하여, 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반기를 들고 신라의 여러 성을 침공하다가 효공왕 4년(900)에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이 산성은 대체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산세와 지형을 따라 암벽은 암벽대로 이용하고, 성벽을 쌓을 필요가 있는 곳에만 성을 쌓았기 때문에 천연절벽과 성벽이 조화를 이룬다. 성의 4모서리에는 굽이지게 곡성을 쌓았는데, 동북쪽과 동남쪽으로 난 2곳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어 상주쪽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다. 성벽 둘레는 650m이고, 높이는 7∼15m이며, 너비는 4∼7m이다.이 산성은 보은의 삼년산성(사적 제235호)과 쌓은 방법이 비슷한데, 정교하게 쌓은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삼국시대 산성의 하나이다.
  • 전화번호 054-533-8566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산42
  • 네이버 견훤산성 검색 링크
기영회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1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6-12-1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폭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기영회도는 소재 선생이 고령의 왕과 실직(實職)에 있는 정이품 이상 문신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기로소에서 연회하는 장면을 기념하여 그런 기록화로 일반적인 계회도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세로로 긴 화면을 2단으로 하여 위에는 기영회 장면을 그렸는데, 가득 차게 그린 건물 안에 노수신(盧守愼). 정유길(鄭惟吉). 원혼(元混). 정종영(鄭宗榮). 심수경(沈守慶). 강섬(姜暹). 임열(任悅) 등 7명이 둘러앉고, 가운데는 무녀가 춤을 추고, 건물 밖에서 악사들이 연주를 하는데 좌우에는 시자(侍者)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아래에는 참여자의 명단을 적었다. 화면의 크기가 가로 51cm. 세로 99.4cm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봉산서원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금산리 584-3
  • 네이버 기영회도 검색 링크
노후 및 노홍 신도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2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6-12-1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2기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2기의 비석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의 할아버지 노익과 아버지 노홍의 행적을 각각 기리고 있다.두 비석의 크기와 형태가 서로 같아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리고 반원형의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의 등에는 비를 꽂아두기 위한 직사각형의 비좌(碑座)를 갖추고 있으며, 머릿돌에는 앞·뒤면과 옆면에 용과 구름무늬를 섬세하게 새겨 놓았다. 비문 전체를 다 알아보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정교한 조각이 눈에 띄는 이 비는 선조 14년(1581)에 세운 것으로, 당대 명필인 한석봉이 글씨를 썼다.
  • 전화번호 054-536-1591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사산길 2-12
  • 네이버 노후 및 노홍 신도비 검색 링크
옥연사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79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6-12-11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3동(4453㎡)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 중기 문신인 노수신(1515∼1590) 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그는 중종 38년(1543) 문과를 급제하고 성균관의 전적(典籍)을 거쳐 사서(司書) 등의 벼슬을 하였으나 을사사화 때 파직되어 19년간 섬(진도)에서 귀향살이를 하였다. 그곳에 있으면서 이황 등과 서신으로 학문을 토론하고 1567년 『숙흥야매잠』, 『대학장구』등의 주해를 달아 사림 사이에서 명성을 쌓았다. 선조가 즉위하면서 기용되어 벼슬이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는 시, 문, 서예에 뛰어났으며 양명학을 깊이 공부하고 승려인 휴정과도 교분을 나눴다.옥연사 경내에는 산 기슭 아래쪽에 강당이 있고, 뒤편 높은 곳에 오현영각과 불위천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노수신 선생을 모신 불위천사당은 영주군수였던 그의 아들인 노대해가 세웠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강당은 봉화현감이었던 그의 증손자 노경명이 효종 9년(1658) 오현영각과 함께 세웠다고 한다.불위천사당과 오현영각은 각각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고,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를 갖추고 있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개인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사산길 2-12
  • 네이버 옥연사 검색 링크
상주 상현리 반송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293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천연기념물
  • 지정일자 1982-11-14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주
  • 조성시대 미상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시 화서면 상현 1리 속칭 창안 마을에는 속리산 정 2품 소나무 모양의 웅장한 자태를 지닌 수령 5백년을 추정하는 소나무가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 마을은 신라 경덕왕 때 몇 사람이 마을을 이루었고 고려 때 화령현이라 하였는데 속리산 줄기의 봉황산이 마을을 에워싸고 죽전, 새재골, 창안, 하현, 주양, 당두, 무동 등 7개 자연취락을 형성하였다. 이 마을은 화령현의 요새지로서 죽전은 대장군이 살던 곳이며, 대모골로도 불렀고 봉황산의 봉황새가 대나무 열매를 먹던 대밭이 있었다 하여 대밭골이라고도 불렀다. 새재골은 일명 재골이라 불리고 사찰이 있고, 창안은 화령현의 정부미를 보관한 창고터라 한 하현의 마을이고, 당두는 옛날 당대가 무동은 화령현 당시 군인촌이라하였다는 옛말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지형적으로 보아 요새지임이 틀림없고, 이러한 요새지 일수록 숲이 왕성하고 깊게 이루어 요새지를 은폐하기에 알맞은 소나무가 많았으리라 믿는다. 이 상현의 노송도 이 때에 어린 소나무로 자라고 큰 나무들은 모두 잘리고 외로이 자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무 밑뿌리는 헝클어진 실타래 마냥 뒤엉켜 그 폭이 5m에 이르고 두 가지가 수간으로 해서 각각 3가지로 벌려 얼핏보기엔 6포기가 한데 묶여 있는 듯하며 그 중 남쪽의 3가지는 허약하고 북쪽 3가지는 1m 20cm의 굵게 뻗어 올라 왕성하다. 높이 15m에 수관이 25m에 삿갓 모양의 웅좌함을 뽐내고 있고 위용을 더욱 높이기 위해 이무기(큰구렁이)가 보금자리를 잡아 안개가 낀 날이나 먹구름이 두텁게 낀 날에 무엇을 뜻하는지 이무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마을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이무기 소리가 들릴 때엔 안개가 노송의 허리를 끼고 덮어 토성의 형태를 이룬다. 동민들은 소나무를 숭상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노송을 해치는 일이 없고 떨어진 낙엽이라도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만일 낙엽 진 솔잎을 쓰면 재앙을 입는다고 한다
  • 전화번호 054-537-7210
  • 관리기관명 경상북도 상주시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50-1
  • 네이버 상주 상현리 반송 검색 링크
신봉리 석조보살입상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26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5-08-05
  • 소유주체구분 국유
  • 소유자명
  • 규모 1구
  • 조성시대 고려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국도변에 서 있는 높이 230㎝의 보살상으로, 넓적한 1매의 화강암에 돋을새김 하였다. 머리에는 3면보관을 쓰고 있으며, 관에는 작은 부처 3구와 관대(冠帶)장식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얼굴은 마멸이 심하나 윤곽이 풍만하고 이목구비가 반듯하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옷주름이 간결하고 두껍게 표현되어 있다. 불신의 뒷부분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둥근 형태의 머리광배와 배(舟)모양의 몸광배를 1줄의 굵은 선으로 구분했다.간결하면서도 장식성이 적고 둔화된 표현 양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전화번호 000-0000-0000
  • 관리기관명 정보없음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산51
  • 네이버 신봉리 석조보살입상 검색 링크
극락정사 아미타여래회도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610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24-07-1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폭
  • 조성시대 조선시대(18세기)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18세기 중·후반기 경상도 북부지역에서 제작된 불화의 양식과 특징을 잘 보여주며, 옛 절터 위에 자그마한 토굴로 건립된 절로서, 1985년경 극락선원으로 불사하며 절을 인수할 당시부터 법당에 봉안되어 있던 불화로 이전의 연혁은 알 수 없다.
  • 전화번호 054-535-0005
  • 관리기관명 극락정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4길 154
  • 네이버 극락정사 아미타여래회도 검색 링크
상주 견훤사당
  • 향토문화유적구분 유형문화유적
  • 문화유적지정번호 제157호
  • 향토문화유적종류 민속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3-03-18
  • 소유주체구분 사유
  • 소유자명
  • 규모 1동
  • 조성시대 조선시대
  • 이미지정보
  • 향토문화유적소개 상주 견훤사당은 간소한 건물이지만, 청계마을의 민속인 동제의 제장으로서 늦어도 19세기 전반에는 창건된 사당이다. 민속신앙인 동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민속신앙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비록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인근에 전승되는 견훤관련 설화와 결합되어 후백제대왕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 작은 건물에 매우 간결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어서 건축 구성상의 특이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사당으로서는 드물게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건립초기의 구성이 현재까지 잘 유지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재이다.
  • 전화번호 054-536-2040
  • 관리기관명 청계사
  • insttNm 경상북도 상주시
  •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315-11
  • 네이버 상주 견훤사당 검색 링크

경상북도 상주시 향토문화유적 목록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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