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유적소개 운곡사는 1946년 예양사에서 분단된 長興任氏 祠宇이다. 이중 永慕堂으로 이름 한 이 건물은 서기 1918년 옛 사우를 중수한 것으로 건물은 목조기와 건물 4채를 세로로 배치하였고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옆면은 팔자 모양이고 팔작지붕 형식으로 지역 특유의 제작 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 운곡사에는 1명의 효자와 6명의 임진왜란 공신 (임근, 임희진, 임자영, 임영길, 임천감, 임석, 임준) 등 총 7위를 배향하고 있었으나, 2013년 임충식 전 국방부장관을 추가로 배향하고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석남(諱 錫昌)은 부모생전에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가 돌아가신 뒤 백발이 성한 몸으로 묘 앞에서 여막살이를 하였다. 또한 증조부의 묘비를 세우기 위해 옥매산에서 비석을 제작하여 문내면으로 운반도중에 풍랑을 만나 조상의 石諱(석휘)와 行德을 소실하게 되었다, 조석남이 이를 슬퍼하여 신에게 간청하였더니 신이 꿈에 현몽하여 잃어버린 조상의 비석을 찾아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조석남의 효행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예조에서 는 1863년(철종14) 비석을 세우고 누각을 건립해 주었다고 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달량진의 성 축조는 1499년(연산군 5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1521년(중종16년)에 이르러 완도 가리포로 이전하게 되자 만호진(종4품)에서 최하급인 권관진(종9품)으로 격하돼 운영된다. 그리고 1627년 달량진 대신 북평 이진에 수군진이 설치되자 달량진은 환곡을 위한 곡식 창고였던 남창(이진진)으로 전환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효자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김석한(金錫漢, 생존연대)의 효행(효행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24년(甲子年)에 건립하였다. 석재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든 석조정려로, 정려 좌측에 일각대문 형식의 출입문이 있다. 앞면 1칸, 옆면 1칸으로 4개의 기둥을 세운 사주식으로 기둥 상부에는 판석을 끼우기 위한 홈이 남아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동해마을은 20년 전까지 안골산 나무밑 제단에서 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당나무 옆 샘에서 샘굿을 치기도 했는데, 샘굿을 쳤던 곳이 돌샘이라고 불리는 동해리 석정으로 보여진다. 틈새에서 흘러나온다하여 석간수, 형태가 소 먹이통과 같다고 해서 구시샘이라고도 불린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어란이라는 여인을 모신 사당으로 어란이라는 여인은 임진왜란시 일본군에 의해 포로로 붙잡혀 일본수장의 첩이 되었으며 명량대첩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첩보를 전해준 것으로 전해짐. 진왜란 직후 바다에서 자살하였으나 지역 주민이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해 주었으며 사당을 만들어 매년 구정부터 대보름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은 중국 당나라 때 법등(法燈)이 한역한 것으로 지장보살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노력하여, 죄를 짓고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까지도 평등하게 구제하고자 하는 큰 뜻을 세운 경전이다. 광보사 소장본은 1474년(성종 5, 成化十年)에 김수온(金守溫, 1409~1481)이 지은 발문이 있어 주목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죽음사는 청재 박심문(1408-1456)의 위패를 모시고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마련된 재실로 淸濟 朴心問은 해남읍 수성리 미산사에 배향되었으나 후손들에 의해 1895년 현재의 사우로 옮겨 졌다. 박심문은 조선 세종대의 문관으로 단종이 폐위되자 퇴직하여 성삼문, 하위지 등과 교류하다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의주에서 사육신의 참사를 듣고 자결하였다. 1804년에 호조판서에 증직되고 1871년(고종8년)에 충정이라는 시호를 받앗다.
향토문화유적소개 1904년(甲辰年)에 건립한 한옥으로 원래 현산면 백포마을에 있던 건물을 이한봉(李漢鳳)이 구매해 1960년대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앞면 6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앞면에는 다듬은 초석과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규모가 크고 구조 짜임새가 튼실하다. 앞면 2짝 세살문 상부에 고창이 설치되었는데 문양이나 유리가 끼워지는 등 구성기법에서 근대기적 특징을 보인다.
향토문화유적소개 강신무 서초희씨는 세습무 해남 삼산면 김춘심씨와 세습무 해남읍 안애임씨에게서 1992년부터 해남오구굿을 전수받아 현재까지 해남에서 유일하게 세습무굿을 연행하며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해남오구굿”은 역사성·정통성·학술성 및 향토적 특색을 인정받을 수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금강산성은 해남읍 진산인 금강산(481m) 정상부에 산정을 분기점으로 북동방향과 남동방향 능선 사이의 계곡을 가로질러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동국여지지 산천조」에 기록되어 있고, 임진왜란 당시 적과 싸우기 위해 제1차 방어선으로 해남읍성을 쌓고, 제2차 방어선으로 금강산성을 쌓았다고 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옥공예 명인 박상훈은 16세 때부터 현재까지 44동안 옥공예 제작 활동에 종사하며 두꺼비, 거북이, 호랑이, 촛대, 용 향로, 용 주전자, 도장함, 재떨이 세트, 컵, 제주도 하루방과 해녀 등 다양한 옥공예를 제작할 수 있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호랑이를 실물처럼 제작하는 것이 특기이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정기봉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28년동안 도자기 공예 제작활동에 종사하며 3대째 가업으로 해남 녹청자 재현 및 전통과 실용성을 겸비한 실용자기를 개발하여 작품재현과 실용자기를 상용화시킨 도예가로 전국 최초로 무 균열청자 태토를 개발하여 무 균열 청자작품 재현 및 무 균열 청자 실용자기를 개발 실용화 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1998년에는 전국공예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고 이어 문화예술분야 전라남도 신 지식인, 공예명장으로도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