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유적소개 전주이씨(全州李氏) 진남군파(鎭南君派) 봉성군(鳳城君) 후손은 6백여년째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을 주축으로 살고 있음. 고잔동 산 87, 85에는 50여 基의 묘가 있었으나 1차 도시개발로 철거되고 현재 12基가 남아있음. 이인현(仁賢) 묘는 12基중에 포함됨
향토문화유적소개 한말(韓末)에서 1920년대 초까지 생존했던 이 고장의 덕망(德望) 높았던 재산가(財産家)·유지로서 본관은 경주(慶州). 일찍이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가난한 민중의 처지를 깊이 헤아려 일부의 땅은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빚과 소작료(小作料)를 탕감(蕩減)해 주는 등 범인(凡人)이면 생각할 수 없는 큰 덕량(德量)을 베풀었다고 함. 그 뒤 선생이 별세하자 은혜(恩惠)를 입은 마을 사람들이 거향적(擧鄕的)으로 장례(葬禮)를 치르고 생전의 고마운 마음씨와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현 대부남4동에 위치한 선행의 묘소 앞에 자선비(慈善碑)를 건립함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자준(子駿), 호는 무곡(無谷), 본관은 파평(坡平). 효종 8년(1657)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예조판서로 빈전도감제조 (殯殿都監提調)가 되어 장례를 치룸. 이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使)·이조판서를 역임하고 기로소에 들어감. 현종 5년(1664)민유중의 탄핵으로 사직한 후 향리인 안산으로 낙향했고 묘는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1991년 시화공단정수장 건설지에 대한 지표조사 중 발견된 고인돌 5기가 있는 집단지역임.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으로 선돌과 함께 거석문화를 대표함. 이 유적은 서쪽 약 200m 거리인 시화공단 정수장 구역내에 있던 11기의 지석묘와 유사한 성격으로 판단되고 민무늬토기가 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주거유적일 가능성이 큼
향토문화유적소개 안산김씨는 13세기 후반에 출사한 김위(金渭)를 1세대로 하는 가문으로 그의 증손인 김정경(金定卿) 때 와서 훈척가문으로 성장하였음. 조선시대 안산 지역에는 연성군 김정경의 넷째 아들 김개의 후손들이 주로 세거하였으며 김개 (金漑, 1405~1484)는 판중추부사를 역임하였음. 선부동 묘역에는 김개의 둘째 아들 김맹전을 비롯한 5대의 묘가 모여 있고 와동 묘역에는 김취경과 김영철의 묘가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안산의 대표적인 성황당으로, 안산시에서 매년 10월 1일에 ’잿머리 성황제’ 를 올리고 있는 곳. 당집은 화재로 새로 지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홍씨부인 영정, 안씨부인 영정, 관음장군 영정, 대신 영정, 마태장군 영정, 용궁칠성 영정, 성황기 등이 보관됨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 중기 문신인 이경희(李慶禧, 1508 ~ ?)의 묘역. 이경희의 자는 중응(仲應),본관은 전의(全義). 세분(世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광형(光亨)이며. 아버지는 괄(?)이고, 어머니는 한서(韓?)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562년 별시 문과에 병과 급제한 뒤 양주목사와 상서원정을 지냄. 손자 언척(言?)의 공으로 도승지에 추증됨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시대의 문신·서예가, 자는 성여(聖與), 호는 척재(齋), 본관은 평산(平山), 순미(順美)의 아들, 명종 19년(1564) 문과(文科)급제, 예조좌랑(禮曺佐郞) 등을 지내고 상례(喪禮)에 있어서 대상 (大祥)후의 입제(笠制)에 백립(百笠)을 통용하도록 함.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임진왜란 이 일어나자 구원병을 파견하도록 힘썼다. 귀국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형조,병조,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후 판중추부사 겸 판의금부사(判中樞府事兼判義禁府事)에 이름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시대의 충신. 자(字)는 사수(士秀), 호(號)는 피구자(披 子),외암(畏菴), 본관은 순천(順天),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과 함께 왕의 특명으로 충주(忠州)의 방어를 나서 탄금대(彈琴臺) 에서 적 수십 명을 맨손으로 죽이고 물에 투신함. 이듬해 의관을 거두어 안산(安山) 동장리(洞長里)에 장사지내고 정려를 세움. 후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장의(壯毅)임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조 인조반정 일등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김류와 아들 경징[한성부 판윤, 강도검찰사. 1589(선조 22)~1637(인조 15)] 증손자 노득[한성부판관. 1645(인조 23)~1711(숙종 37)] 등 조선중후기에 조성된 3기의 묘이며 안산 역사와 연관이 깊어 향토사적 가치가 높음
향토문화유적소개 효자 홍정희(洪貞羲) 선생은 조선 후기인 1880년대 초 대부남동에서 태어난 이름난 효자로서 본관은 남양. 어릴때부터 성격이 온순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정성을 다해 봉양(奉養)하여, 그의 뛰어난 효행(孝行)과 마음가짐은 마침내 조정(朝廷)에 까지 알려져 고종(高宗) 30년(1893) 6월 효자 정문(旌門)이 이곳에 건립 되고 만인의 귀감 (龜鑑)으로서 표상(表賞)됨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 초기의 무신(武臣)으로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중공(仲恭), 아버지는 증호조판서 경빈(景斌)임. 1449년 경흥도호부사(慶興都護府事)가 되어 새로 설치된 육진(六鎭)을 수비하여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움. 묘는 화정동에 위치해 있고 좌측에 박거겸 장군 묘가 있고 우측에 부인 진주강씨의 묘가 있으며 두 묘 앞에 묘갈이 있는데 보통 묘갈처럼 정면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세로로 세워져 있어 매우 특이함. 부인 묘 옆으로 근래에 새로 세운 묘갈이 하나 더 있으며 장명등과 망주석 한쌍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