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유적소개 빗접바위(일명 밤바위)는 가납리 가래비장터에서 350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3km정도 떨어진 덕도리 마을 입구에 있음. 화강암 재질의 이 바위는 2쪽으로 쪼개져서 마치 빗접을 세운 것과 같다고 하여 빗접바위라고 불려져옴. 또 밤톨이 붙었다가 떨어진 것 같다고 하여, 곧 밤바위라고도 불려짐. 바위는 직경 6m가 넘는 큰 장방형으로 5~6기가 포개져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본관은 남양(南陽). 묘는 산기슭에 위치하며, 봉분은 쌍분 합장묘로 정경부인 장수 황씨와의 합장묘. 석물로는 신도비 1기, 묘표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망주석 2기, 문인석 2기 등이 있음. 신도비는 묘역 좌측 하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근 비각이 건립됨.
향토문화유적소개 태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고, 죽은 뒤 태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음. 묘는 연곡리 마을 우측 나지막한 야산 기슭에 위치해 있음. 본래 이 별묘는 고종 5년(1868) 현재의 위치에서 약 150m 떨어진 서북쪽 지점에 위치했던것이나 퇴락이 심하여 1914년 이곳으로 이전, 1949년 곡장 보수, 1973년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름.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 전기의 문신. 묘소 주위에는 화강암석축에 한식기와를 올린 곡원이둘러져있고, 묘앞에는 1960년에 새로 세운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 비좌를 갖춘 대리석 묘비가 있음. 상석,향로석,장명등,문인석 2기등 석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장명등은 팔각 원당형을 기본으로 품위있는 모습을 갖춤. 묘소 언덕 아래에는 2기의 신도비와 비각이 위치해 있는데, 좌측의 신도비가 본래의 것으로 운문이 정교하게 조각된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춤.
향토문화유적소개 정민시(1745~1800)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영조 49년(1773)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침. 묘는 양주읍 산북 3리 마을 내의 후손 정열씨의 집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00m쯤 떨어진 지점의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난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16기의 정씨 일가 공원묘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공원묘지를 지나 구릉 상부에 위치하고 있음. 정경 부인 완산 이씨와의 합장묘로서, 봉분의 크기는 직경 550cm, 높이 155cm임.
향토문화유적소개 윤근수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 원래의 사당은 소실되어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1990년 10월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름. 삼문의 솟을 대문에는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고 대문 좌우로는 붉은 벽돌담이 둘러져 있음. 그의 시호를 딴 “문정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삼문을 지나면 본당인 사당이 위치하고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 세종(世宗)때의 충신으로 병조참판을 지냈으며, 나라에 공을 세워 의평군에 봉해지고 절충장군의 칭호를 받았다고 전해짐. 선생의 묘는 숙부인 연일정씨와 합장묘로서, 묘 앞 중앙에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본래의 묘비가 서 있음. 신도비의 규모는 높이 96cm,폭 48cm,두께 21cm이고 묘의좌측에는 새로 건립된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 비좌를 갖춘 비석이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본관 여산(礪山). 묘의 위치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與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는 선암리 능골 마을의 나지막한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음. 묘는 묘역의 제일 상부에 동남쪽을 향하여 있으며 정경부인 남원 양씨와의 합장묘임. 동자석은 서로 마주보지 않고 고개를 약간 돌려 묘역 전면을 향하고 있음. 신도비는 묘역의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비각 내에 안치되어 있는데, 비각은 전,후 홍살이고, 좌,우는 적별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