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유적소개 가안리 송와정은 서광윤의 5세손인 서사묵이 후학 양성을 위하여 정조 13년(1789) 창건한 후 이름있는 유학자를 배출하였고 유림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도야하는 틈틈이 자연을 벗 삼아 정신의 여유를 찾던 정자이다. 광복 이후 마을 안쪽의 운은정이 초등학교 분교로 활용될 때 송와정도 부연을 달아 교실로 확장하여 운영하였다.
향토문화유적소개 가안리 가천서당은 운은정과 추모재 두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운은정은 서광윤이 광해군 13년(1621)에 향리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창건하였으며 추모재는 정조 4년(1780) 서한진의 뜻과 덕을 기리는 재사로 건립된 후 문중과 지방 학도를 교육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운은정과 추모재는 강학장소로 활용되고 많은 후학과 인재를 배출하며 서당의 역할을 하였으므로 가천서당이라 불렸다.
향토문화유적소개 미현리 부운재는 기계유씨의 시조인 신라 아찬 유삼재공의 영묘를 수호하기 위해 세운 재궁으로 1710년(숙종 37년)에 부운암 16칸을 건립하면서 비롯되었으며 1920년에 정사 12칸과 낭무 18칸의 목조와가 3동을 개건하여 부운재라 개칭하였다. 그 후 1944년과 1959년 1979년에 각각 증개축과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1985년에 는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안국사지는 포항시 기계면 운주산에 위치한 폐사지로, 문헌에 따르면 신라 소지마립간 시기(490~500)에 처음 창건되어 1442년(조선 세종 4)에 중창되었으며 1907년(대한제국 융희 원년) 산남의진(山南義陳)의 의병항쟁 과정에서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현내리 신라아찬유공유허비는 조선 정조 19년(1795)에 경주부윤 유한모가 시조가 살던 옛터를 찾아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비는 기계유씨 시조가 거주하던 세거지이며 관형지인 기계면에 건립되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문화유적이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현내리 도원정사는 1928년 건립된 건물로서는 수작(秀作)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물이다. 해방 직후 아직 공교육 체계가 미비하던 시절에 기계중학교의 교실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교육 유산으로서 가치도 있다. 또한 후손들이 정성스럽게 보존하여 왔으며 안정되게 형성된 문중 조직이 이 정사를 수호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포항 향토 침선장 조정화는 재봉틀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손바느질만으로 한복을 제작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다. 한복 문화의 맥을 잇기 위해 전통 한복을 수집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으며 후학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등 우리 전통을 잇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대전리 백계당은 내연산 산신인 할무당 할매를 모시는 사당이다. 현 위치로부터 위로 약 2km 떨어진 내연산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의 할무당재에 있었던 것을 1928년에 이건하였다고 한다. 이건 이전에 3차례(1892년. 1901년. 1914년) 중수한 기록은 있지만 창건 기록은 없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화진리 구진마을 앉은 줄다리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 오전에 행해지는데 앉아서 줄을 당긴다고 하여 앉은 줄다리기라고도 한다. 구진마을 앉은 줄다리기는 이 지역의 독특한 문하이고 줄다리기 자체보다는 이 의식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새기고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중단된 적 없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행해지는 민간의식으로 가치가 높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장윤경은 임진왜란 시기의 효자이며 충신이었다. 그의 효행과 충성은 조정에서 정려한 것으로 기록되었고 포항과 영덕의 읍지에 모두 등재되었다. 현재 충효사 내부에 충효각이라는 현판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정려비를 포함한 정려각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오의정은 여강이씨 재실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과 좌우측에 계자 난간을 달았다. 오의정 내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된 영일 우각동 향나무가 있다. 이 향나무는 오의정 이의온이 오의정을 세우고 손수 심은 나무로 수령이 400여 년이나 된다고 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유계리 상덕사와 죽림사는 윤백주와 윤빈 선생을 모시는 사당으로 두 분은 부자간이다. 윤백주는 이 마을 출신으로 1720년 무과에 급제하고 영조 때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수충양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또한 윤빈은 청하 서계리에서 출생하여 무과에 오른 후 강원도에서 일어나 혜적이라는 도적을 토벌한 공으로 추충양무원종공신에 녹훈되어 어모장군 선전관에 제수되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파평윤씨 일우공 종중 소장 유물은 조선 숙종과 영조 당시 무과에 급제한 윤백주와 윤빈 두 부자가 급제행렬 시 사용한 어사화를 비롯하여 일우공 윤빈의 호패와 각종 문서류이다. 문서는 대부분이 당시의 관찰사 수령들과 주고받은 것으로 당시 사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길주진병마절제사 인수인계 시 작성한 인계항목 명세서인 해유문서와 신입관료에 대한 선배 관료의 괴롭힘 등을 기록한 문서인 면신례첩은 보기 드문 자료이다. 파평윤씨 일우공 종중 소장 유물은 모두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상태가 양호하고 지역사를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이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 영조 시기 사망한 남편 최도흥(~1733)을 따라 순절(殉節)하여 열부(烈婦)로 칭송받은 영양(現영천) 이씨(~1733)를 정려(旌閭)하기 위해 1737년 건립된 정려비로, 관련 사적이 명확하며 그 건립연대도 비교적 오래되어 포항 지역에 소재한 여러 충효열비의 원형에 가깝다. 본 비는 조선 후기 성리학 이데올로기의 확산에 따라 ‘일부종사(一夫從事)불경이부(不更二夫)’로 대표되는바 여성의 정절(貞節)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양상이 이곳 포항 지역에서도 보편적으로 행해졌다는 사례를 잘 보여주는 자료로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으므로 향토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고려 후기 화엄종의 고승(高僧)으로 활동했던 진각국사 천희(眞覺國師 千熙, 1307~1382)를 추모,현창하기 위해 해당 인물의 본향(本鄕)인 흥해 일원에 건립된 사당 및 유허비로서, 관련하여 1370년(고려 공민왕 19)에 진각국사의 학덕(學德)을 기려 국가에서 흥해현(興海縣)을 흥해군(興海郡)으로 읍격(邑格)을 상승시키는 혜택을 내린 기록이 전한다. 현존하는 사당 및 유허비는 그러한 혜택을 입었던 흥해배씨 문중 후손 및 지역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읍지 및 지리지 등의 문헌자료를 통해 방증했을 때 대체로 조선 후기인 18세기 후반~19세기 중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 들어 성리학 윤리의 보편화에 따른 조상숭배 및 현창사업이 성행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것이 문중 및 지역의 정체성과 단결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였다는 역사적 정황을 고려한다면 본 진각국사 사당 및 유허비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로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고려 후기의 고승(高僧)이었던 인물의 기억이 시대적, 사상적 변화에 따라 문중의 조상이자 지역의 대표 위인으로 전이되어 가는 독특한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 충분한 역사,문화적 가치가 인정되므로 향토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자 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선정비는 왕조시대에 부임관료의 다스림을 받는 지역민이 선정한 관료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의 한 종류였다. 선정비는 원칙적으로 선정을 베푼 수령이 이임한 뒤에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설립하는 것이었고 조선 초기에는 비교적 이런 전통이 잘 지켜졌다고 하나 중기 이후 관료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수령의 명예욕이 통제되지 않으면서 선정비가 남설되는 경향이 있다. 조정에서는 자주 이를 금단하는 논의가 있었고 설립된 선정비를 철거 매몰하라는 명령도 자주 내려졌다. 현재 지역에 남아있는 선정비 가운데 흥해군, 연일현, 장기현, 장기현에서 군수, 현감을 지낸 분의 선정비를 향토사 연구를 위한 자료로 삼고자 향토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