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유적소개 광남서원은 정조 15년(179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황보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순조 31년(1831)에 광남이라 사액되고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념물로서의 의미가 깊고 충효 가치에 대한 전설과 실감이 두드러지므로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가치가 높다.
향토문화유적소개 나곡서원은 안간을 봉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중종 때 기묘사화에 연루된 좌의정 안당의 손자인 안간이 피신 와서 장기현 오야리에 거주하였고 돌아가신 후 묘소를 오야리 야산에 두었으나 후손이 실묘하여 구룡포읍 병포리 정자산에 단소를 선단하였다. 1936년 제당을 착공하여 1938년 6월 하순경에 완공하여 사제를 모셨다. 그후 1977년 나곡서원으로 성균관 인가를 얻었다. 순흥안씨 포항 입향조를 기념하는 서원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일월사당은 옛 신라 시대 이래로 일월지 및 도지들(都祈野)에서 지내던 일월신제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1980년대 영일군 및 지역 유지들의 주관 하에 인근 지역에 신축한 사당으로, 현재까지도 포항시에서 개최되는 일월문화제에 맞추어 격년으로 제사가 이어지고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중양서원은 조선시대 서섭과 서시복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정조 18년(1794)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된 뒤에 복설되었다. 중양서원은 달성서씨 포항 입향조를 기념하는 서원으로써 교육적 기능과 함께 이를 잘 활용하여 지역문화기반을 공고히 하는 바탕으로 삼고자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옥동재는 수원김씨 포항 입향조인 노은 김예중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실로서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건물의 형태는 노동재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30호)와 평면형태 및 건축수법도 거의 유사하고 건립연도도 비슷하다. 당시 포항지역 건축물의 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중명리 정사도 유허비는 고려 공민왕 당시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길렀던 정사도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다. 정사도의 본관은 영일 호는 설곡이다. 후손 정성검이 편찬한 문정공설곡정선생유허비중수기에 의하면 정사도는 유허비가 세워진 원촌리(현 중명리)에서 태어났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고향인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오천서원은 선조 21년(1588) 오천읍 구정리에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광해군 4년(1612) 현 위치로 이건하였고 이듬 해 오천이라고 사액을 받았다. 흥선대원권 때 서원철폐평으로 훼철되었다가 고종 말년에 복원 후 1916년 화재로 전소 되었고 1917년 신축하였다. 2015년 현재의 오천서원으로 중창하였다. 건립 당시 정습명과 정몽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고 영조 16년(1740) 정사도와 정철을 추향하였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삼명서원은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철종 5년(1854)에 중수하였으며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속되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며 1968년에 보수하였다. 이눌은 이대임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장기향교의 선현 위판을 용암굴에 이안하고 의병을 이끌고 박진의 진영에 합류하였다고 한다. 국난에 창의한 의병장을 기념하는 서원으로 호국영웅의 사적을 교육할 가치가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동산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나가 경주성 탈환 등에 공을 세운 직재 서방경과 낙와 서극인을 기리기 위해 정조 9년(1785)에 건립한 달성서씨 재실이다. 사당이면서 서원의 기능을 겸한 시설로써 오랫동안 향촌의 지역공동체를 이끌어간 정신적 지주처가 된 곳이다. 또한 유교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뿐 만 아니라 충절이라는 상징적 가치가 충분하여 선비들의 충절문화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 정보습득의 전문 공간 및 체험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봉덕서원은 통덕랑을 지낸 박두극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박두극의 호는 괴은이며 본관은 밀양이다. 서원은 전면의 블록담장 사이에 세운 외삼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4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 강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강당 뒤에는 내삼문과 3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 사당을 두어 전체적으로 전학후묘형의 배치를 이루게 하였다. 봉덕서원은 밀양박씨 포항 입향조를 기념하는 서원이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안산서원은 홍문관 교리를 지낸 김숙과 통덕랑 김창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서원의 전체적인 배치는 강당 내삼문 사당을 동일축선상에 배치한 전학후묘형이다. 안산서원은 경주김씨 포항 입향조를 기념하는 서원으로써 교육적인 기능과 함께 이를 잘 활용하여 지역문화기반을 공고히 하는 바탕으로 삼고자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포항시 장기면 방산리 일대에는 과거로부터 농한기 부업으로 한지 제작에 종사하던 집안이 많았는데, 현 기능보유자인 장두천 옹 역시 조부 대 이래로 이어져 오던 가업을 이어받아 60여 년간 한지 제작에 종사하면서 포항시 관내에서는 유일하게 전통 한지 제작 기술을 전승하고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서산서원은 김충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유림의 공의로 영조 36년(1760)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7년 복원하여 김응장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서산서원은 지역에 세거하는 경주김씨 서화문중의 상징적인 유산이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삼효각은 비석과 이를 보존하는 정려각이다. 이 정려각은 효자 허기와 그 맏아들 허식의 처 경주최씨 및 셋째아들 허순의 처 곡강최씨의 효열을 표창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비각은 남향으로 정면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내부에 살문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안에 3기의 비석과 2점의 기문이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금산서원은 허진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숙종 33년(1707)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9년 유림이 사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허진수의 자는 사서 호는 염호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천품이 온화하고 재기가 뛰어났으며 벼슬을 하지 않고 도산서원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만년에 고향에 정자를 짓고 후진양성에 전력하이 이때부터 그곳을 금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산서원은 김해허씨 포항 입향조를 기념하는 서원이다.
향토문화유적소개 덕림서원은 오방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영조 36년(1760) 지방 유림의 공의로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그 귀 복원하였다. 서원은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을 동일축선상에 둔 전학후묘형으로 구성하였으며 강당의 전면에는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였다. 해주오씨 포항 입향조를 기념하기 위해 세원 서원이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임중리 김사민 정효각은 장기면 임중리 새장터 마을 앞 도로변에 위치하며 효자 김사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북동향 건물로 맞배지붕의 겹처마 건물이다. 정려비와 정효각은 모두 1841년에 건립되었으며 정면에는 정효각 현판이 있고 양쪽에는 방풍판이 있다. 도로변에 위치하였으나 도로가 높아지면서 2006년 중수하였다.
향토문화유적소개 조선 후기 장기 지역의 명망가(名望家)로서 향교 재건 및 주민 구휼 등에 많은 재물을 희사하여 찬탄을 받은 인물인 덕계공 임재화(1728~1810)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유허비(遺墟碑)로, 『을사유안(乙巳儒案)』(1790), 『망양안(望讓案)』(1908) 등의 문헌에도 해당 인물의 행적이 전한다. 조선 후기 사회지도층이 도덕적 의무를 솔선수범한 사례를 잘 보여주며, 당시 지역사회의 동향 및 재지 사족의 기부문화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 충분한 역사,문화적 가치가 인정되므로 향토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학삼서원은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대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선배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7년 복원하였다. 이대임은 임진왜란 때 장기향교의 성현 위판을 보호한 공이 있고 창의하여 장기전투와 경주전투에 참전하여 그 공을 인정받아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국난에 창의한 의병장을 기념하는 서원으로 호국영웅의 사적을 교육할 가치가 높다.
향토문화유적소개 구만리 독수리 바위는 오래도록 호미곶 일원 어민 및 해녀들과 함께 하며 해양문화의 일부가 되어온 해안가에 위치한 자연물이다. 구만리 독수리 바위는 파랑의 풍화침식작용을 통해 형성된 시스택으로 동해안에서는 형성되기 어려운 지형인 점에서 특이점이 있다. 호미곶을 중심으로 한 해녀문화가 보존 전승되고 있으며 풍어를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제를 지내는 곳으로 바다를 생활기반으로 하는 어민들에게 일종의 풍요화 안전을 기원하는 장소성이 강한 곳으로 해양문화 관련 자료로 삼고 이르 보존하고자 향토기념물로 지정한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하세만은 이 지역에 살았던 효자였다. 부모의 병에 정성을 다해 돌보았고 그 효성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고 한다. 기판과 비석의 기록으로 보아 고종 20년(1883)에 정려를 명했고 고종 24년(1887)에 비각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 비각은 새로 세웠고 오래된 비석은 일부 파손이 있지만 보존되어 있다.
향토문화유적소개 학생 전희 효자비는 제작시기를 알 수 없지만 오랜 기간 동안 효자리에 보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희의 효행은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되었고 지역의 역사지에 빠짐없이 등재되었다. 이로 인해 효자리라는 마을 명칭의 어원이 된 효자 전희의 전설을 입증하는 실물로서의 강한 진실성을 가지고 있다. 그 점에서 이 비석의 문화적 가치는 매우 높다.